(T) 아큐/ 숙업전환의 자세 ④
불구자득의 성불/ 빈녀가 자식을 끝까지 지켰듯이 법을 끝까지 지키는 신심,
아래 내용은 이케다선생님의 저서인 어서의 세계, 개목초 강의, 법화경의 지혜에서 질문의 요지에 해당하는 내용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어서에는 난이 많이 일어나도 그것을 인내하고 신심을 관철하면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성불의 공덕이 있다는 불구자득의 성불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묘법의 힘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무명이라는 마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무명은 묘법을 모르는 근본적인 무지를 말합니다. 무명은 마음 속에 있는 미혹이므로, 이것은 역시 자신의 마음속에서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은 한마디로 말하면 신(信)을 관철하는 것입니다.
무명을 타파하는 ‘신’의 뜻을 단적으로 가르친 대목이 열반경에 설한 빈녀(貧女)의 비유입니다. 석존은 선남자들에게 “이 어머니가 자식을 끝까지 지켰듯이 법을 끝까지 지켜라”고 지도하셨습니다. 법을 끝까지 지키는 신심, 그것이 성불을 향한 길이라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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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구자득의 성불
나기자: 어서에는 난이 많이 일어나도 그것을 인내하고 신심을 관철하면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성불의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혜영: 구하지 않아도 성불의 공덕이 있다니, 그런 길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유광호: 불구자득하는 성불입니다.
아큐: 본래 중생의 생명은 묘호렌게쿄의 당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한 신(信)’에 의해 본래 갖추고 있는 묘호렌게쿄의 자재로운 작용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기자: 선생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에 이 묘호렌게쿄가 자유자재로 작용할 때, 그 생명을 불계의 생명이라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큐: 묘법의 무한한 힘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작용하여 인간의 여러 가지 힘으로 발휘됩니다. 예를 들면, 홀로서는 용기, 인내하는 힘, 고경을 헤쳐나가는 지혜, 남을 생각하는 자비로운 마음, 그와 같은 이른 바 부처의 생명으로서 설한 것들이, 필요한 때에 적절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묘법의 힘을 인간의 힘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유광호: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묘법의 힘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가 실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근본적인 미혹, 즉 무명(無明)이라는 점입니다.
● 묘법을 알면 무명은 즉각 소멸됩니다.
아큐: 무명은 묘법을 모르는 근본적인 무지를 말합니다. 또 묘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명이 방황하다가 충동적인 어두움에 지배당합니다. 이것이 불행을 초래합니다. 모든 불행과 고뇌의 근본에는 이 무명이 있습니다.
이혜영: 따라서 묘법을 알면 무명은 즉각 소멸됩니다. 이것을 비유해서 말하면, 묘법이 태양이고 무명은 태양을 가리는 검은 구름과 같습니다.
유광호: 암운이 걷히면 햇빛이 비추듯 근본적 미혹을 타파하면 바로 묘법의 힘이 생명에 작용하기 시작하여 각종 공덕과 가치창조 작용이 나타납니다. 그런 형태로 공덕과 가치가 꽃피는 것이 ‘연화(蓮華)의 법’입니다.
아큐: 그래서 “중생은 묘법의 당체이고 본래 불계의 생명을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불계는 무명의 암운을 걷어 내는 투쟁을 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단순히 형식적으로 제목만 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승려에게 부탁해서 대신 부르게 하는 것은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이혜영: 선생님께서는 “부르는 사람이 무명을 걷어 내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무명은 마음 속에 있는 미혹이므로 이것은 역시 자신의 마음속에서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은 한마디로 말하면 신을 관철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기자: 성불을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자신입니다.
“남에게 지적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먼저 화가 납니다” “화를 내고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생각에 또 화가 납니다.”라는 어느 여자부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유광호: 제목을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대성인과 같은 의미에서 제목을 부른다는 행이 필요합니다. 즉 그 근본에 ‘무명과 투쟁하는 마음’인 ‘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큐: 대성인이 넓힌 제목은 이를테면 ‘투쟁의 제목’입니다.
무명은 의심, 불안, 번뇌 등 각종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것을 타파하는 힘은 ‘신’이외에는 없습니다. 대성인은 ‘무의왈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혜영: 그리고 “원품의 무명을 대치하는 이검은 신의 일자이니라”(어서 751쪽)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날카로운 검입니다. 마와 투쟁한다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무명과 날카롭게 투쟁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유광호: 우리는 광선유포를 방해하는 마의 세력과 싸웁니다. 이 마와 투쟁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말하면 무명과 벌이는 싸움입니다. 또 인생에서 일어나는 여러 곤란과 싸우는 것도 그 본질은 무명과 벌이는 싸움입니다.
아큐: 묘법에 대한 신(信), 즉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 ‘반드시 행복해 진다’ ‘반드시 광선유포를 실현한다’는 일념을 잃으면, 인생의 곤란에도, 광포도상의 장마에도 지고 맙니다.
이혜영: 의심하는 마음이나, 한탄하는 마음은 무명이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나기자: 무명을 타파하는 ‘신’의 뜻을 단적으로 가르친 대목이 열반경에서 설한 빈녀(貧女)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 열반경에 설한 빈녀의 비유
이혜영: 열반경에서는 대체로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설합니다.
“살만한 집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빈녀가, 어느 여인숙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그 여인숙에서 쫓겨난 빈녀는, 갓난아기를 안고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강한 폭풍우를 만나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또 모기 등과 벌, 독충에 시달린다. 드디어 모자가 강을 건너려 할 때 물살이 거세어 졌으나 아이를 놓치지 않고, 결국 모자는 함께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식을 생각하는 자애에 넘친 마음의 공덕으로 죽은 후 범천에 태어났다”
나기자: 빈녀가 목숨을 내 던져 자식을 지키려고 한 그 깊은 자애심에 경애를 변혁하는 힘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유광호: 이 경문 마지막 부분에 석존이 호소한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석존은 선남자들에게 “이 어머니가 자식을 끝까지 지켰듯이 법을 끝까지 지켜라”고 지도합니다. 법을 끝까지 지키는 신심, 그것이 성불을 향한 길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아큐: 이른바 ‘불석신명(不惜身命)’ ‘아불애신명(我不愛身命)’하는 신심입니다. 불석신명은, 우리가 하는 실천에서 말하면, 헛되이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을 위해 꿋꿋이 살아감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