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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광포실록의 95년 초여름에 생긴 일

myungho 2013. 12. 16. 11:15

 

광포실록/ 1995년 초여름에 생긴 일

불법은 인과이법이다. 자신의 생명에 엄연히 존재하는 염마법왕의

단죄를 생애 받게 될 것이다.

 

 

 

 

 

 

광포실록 중에 아래 내용은 처음 듣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법문 때문에 남에게도 적시 당하시는 여인이니, 마치 불경보살과 같습니다”(어서 14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이라면 악을 가책하는 신심이 대단합니다.

 

보내주신 한국SGI 광포실록, 1995년 초여름에 생긴 일의 일부 내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겠습니다.  

                                        아    래

본부에서 파견한 사정위원 중에서도 특히 최종순씨는 마산권간부회 석상에서 앞뒤 배경설명도 없이 공개적으로 K사무장에 대한 인식공격을 했다. “마산권 K사무장은 현지에서는 아주 좋은 인품의 사람으로 되어있지만, 본부간부들 사이에서는 아주 못 쓸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바달다와 같습니다.

 

최종순씨는 경멸이 배어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K사무장으로부터 따뜻한 배려를 받고 있던 회원들로서는 최종순씨의 이야기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최종순씨는 회원들의 마음 따위는 살필 겨를도 없었다.

 

오로지 박재일씨를 의식해서 마산에 파견된 바의 임무를 다했다는 스스로의 위안만이 절실했다. 당시 최종순씨 입장에서는 전국남자부장인 아들 최해성씨가 박재일씨의 수족으로서 일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그 성패가 남달리 절체절명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들의 안위에 관한 한 과격하고 민감해졌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종순씨로부터 모욕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듣게 된 K사무장은 그 자리에서 항의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본부간부들에게 빈축을 사게 됐는지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K사무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장한 청년 4, 5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내 K사무장을 쓰러뜨리고는 사지를 각각 들고 질질 끌고 가서는 화장실에 던지듯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밖에서 문고리에 대걸레로 빗장을 질러 잠가버렸다.

 

최종순씨가 참석한 간부회에 앞서 윤채규씨가 파견되어 참석했던 간부회에서 심상찮은 기미를 느꼈던 정병조씨가 미리 요주의 인물 주위에 건장한 청년들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산권 K여자부장이 참다못해 소리쳤다. “이런 인권유린이 어디 있습니까? 뭐하는 짓들입니까!” 단호하고도 또렷한 음성이었다. 아무리 혼돈의 시대라도 살아있는 양심은 있게 마련

 

저도 95사태 당시 이즈미 지도장으로부터 파 화합승이라는 누명을 쓰고 학회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시 악랄했던 집행부의 권력에 대해 말씀 드리고,

95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79년 이케다선생님 회장 용퇴의 법난사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95사태, 권력의 포로가 되어 동지의 목에 칼을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당시 저는 부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학회 본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박재일 사무총장은 이즈미 한국지도장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이사장을 허수아비로 만들며, 조직 속에 망은의 패거리들을 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의 잘못된 인사에 강력히 반발하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이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이즈미지도장에게 참언하였으며,

저는 즉시 ‘광포의 방해자,라는 낙인이 찍혀, 부이사장 역직에서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박덕현 이사장은 “이즈미 지도장이 하는 일인데 낸들 우짜노!”라는 말로 지도장이라는 권력 앞에 몸을 사리고 있었습니다. 광포를 위해 사신홍법 하자던 동지의 이중적인 행동을 보며, "홀로 선다"는 마음으로 회원들에게 박재일의 부정과 부패를 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파 화합승자로 매도하여 사정위원회에 회부시켜 불교회에서 퇴출시켜 버렸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권력의 쇠사슬에 포로가 되어 동지의 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이는 삼세의 인연으로 맺어진 벗의 마음을 베어 버리는 무서운 배신행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만행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제가 닛켄종으로 도망갔다는 거짓말을 조직에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의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 "차 부이사장은 학회의 배신자"라는 폭언을 하며 어머니를 괴롭혔습니다.

 

“사악한 소문은 창칼보다 더 잔혹하게 사람을 죽입니다.” 그들은 권력이라는 쇠사슬을 이용해 모든 것을 짓밟아버렸습니다

 

79 이케다선생님 회장 용퇴의 법난사

 

95사태의 폭풍 속에서도, 저는 항상 1979 4 24일 종문과 투쟁한 선생님을 생각하였습니다. 이 날 선생님은 19년간에 걸쳐 역임한 창가학회 제 3대 회장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되셨습니다.

 

그 배후에는 악랄한 종문의 권력이 있었고 또한 그 종문과 결탁하여 온갖 방법으로 학회를 공격하는 반역의 퇴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파괴시키려고 하는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모략과 탄압이었습니다.

 

어성훈에는 여러 무지의 사람이 있어서 악구매리 등 운운”(어서 140)라고 있습니다.

광선유포의 투쟁으로 인해 악구매리 당하는 것이 참된 법화경의 행자라고 할 것입니다. 나아가 사도어서에는 현성은 매리함으로써 시험되느니라”(어서 958) 진실한 신앙자는 매리 당하고 참언받으며 조소 당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축생과 같은 중들의 폭거와 압제로 인한 우리 벗의 고뇌를, 비명을, 격노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피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아파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종문은 학회의 종교 법인을 해체시키겠다는 속셈으로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그것을 추진하던 것이 저 악명 높은 전직 변호사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부들은 종문과 퇴전한 반역자의 책략에 완전히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저 상황에 떠밀리고 만다면 도대체 학회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심하고 또 기가 막혔습니다.

 

● 사자가 되어 나는 혼자서 간다.

 

1979 5 3-

소카대학 체육관에서 ‘7개의 종의 총 마무리를 기념하는 대망의 제40회 본부총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대로라면 모든 동지들이 불타오르는 열의로 즐겁게 다음 목표를 가지고 최고의 영예를 가슴에 간직하며 맞이하는 환희의 날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질투에 미쳐 날뛰는 종문을 비롯, 사악한 퇴전자 등 이들의 아수라가 이 축하의 모임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총회에서는 이케다 선생님에게 박수치는 것도 왠지 삼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회합에서도 이케다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던 어느 간부는 이날 단상에 오르자, 종문을 두려워 해서인지 선생님이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말할 때는 박수를 절대로 치지 말라고 어느 청년부 최고 간부가 말했다고 합니다. 무서운 종문의 마성에 중독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수라에 겁먹은 겁쟁이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동지의 눈동자는 진지했다. 소리를 내서 외치고 싶은 생각마저 억누르는 그 마음을 나는 아플 정도로 느꼈다

체육관을 나온 직후 복도를 걷고 있는 내게 달려와 주신 다부진 부인부 여려 분과 만났던 일은 지금도 나의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떠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합이 끝나고 특별 대기실에 있던 고승과 중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지만,

 하고 무시하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할 정도로, 그 흉한 모습은, 자기자신의 생명에 엄연히 존재하는 염마법왕의 단죄를 생애 받게 될 것이 절대로 틀림없다. 불법은 엄한 인과의 이법이기 때문이다.

 

이 음험하기 짝이 없는 교활한 무리를 따라 가서는 결코 안 됩니다. 어떠한 탄압을 받더라도 인내즉 신심입니다. 유화인욕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 맺음 말

 

    ◉ 선생님께서는 불경이 실천한 불굴의 정신, 끈기 있게 진지하게 성실하게 말하라불경보살은 참으로 현명합니다. 상대방이 장목와석으로 박해하려고 하면 일단 도망쳐 피합니다. 그리고 멀리서 ‘24문자의 법화경을 큰소리로 외칩니다.

어떤 싸움에서든 귀착되는 곳은 불경보살의 대화입니다.

 

어서에 대사에는 소서가 없다. 대악이 일어나면 대선이 온다. 이미 대방법이 나라에 있으니 대정법이 반드시 넓혀지리라”(어서 1300) 선생님께서는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나는 나의 신념으로 승리할 것을 결의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대성인께서는 “결국은 천도 버리시고 제난도 당하여라. 신명을 바칠 뿐이로다.(어서 2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과 이케다 선생님의 마음을 묶을 수 있는 어떠한 쇠사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95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장마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의 신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댓글

 

 세상만사 13.12.14. 11:40

 

한국SGI 광포실록[16] | <5>1995년 초여름에 생긴 일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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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자 | 2013/07/04
  조회수 | 834
  파일이름 | 광포실록16.pdf 파일크기 | 62.5KB
     

<5>1995년 초여름에 생긴 일③

1993년 당시 문제의 마산문화회관 감리를 맡았던 J사무장은 박재일씨의 경남방면 포스트였던 정병조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감리상의 문제인양 보였지만 J사무장이 정병조씨의 사람 됨됨이를 불신해서 순순히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J사무장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J사무장은 생활근거지인 마산에서 진주문화회관으로 쫓겨 가고 경남상공회의소 직원이었던 K씨가 마산문화회관 사무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이렇게 경남방면의 인사추천권을 거머쥐고 있던 정병조씨는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러니 교육자 출신인 박준권방면장의 운영상 의견조차도 자신의 비위에 안 맞으면 면전에 대고 윽박지르듯이 나무라는 것이 늘 있는 일이었다. 하물며 박재일씨 면전에 대고 그의 비리를 책한 K사무장은 과연 어떤 처분을 받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지부장 역직해임과 동시에 제명처분을 받고 당연히 직원에서도 잘렸다.
더 이상 손써 볼 수 없었던 K사무장은 당시 이사장이었던 박덕현씨에게 그간 마산에서 일어난 박재일씨와 관련된 비리를 낱낱이 보고했다. 그리고 올바른 학회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건의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 어떤 조직적인 조치나 박덕현씨로부터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대신 부이사장들이나 우종희부인부장 등 본부간부들이 연이어 마산에 내려왔다. 그들은 오히려 K사무장을 사정(司正)대상으로 한 현지조사 활동의 일환으로 파견된 것이다. 그들은 막상 당사자인 K사무장의 이야기는 들어보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측은하다는 듯 때로는 경멸하는 듯한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본부에서 이 사건에 대한 고정된 인식과 처리방침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K사무장을 주위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회원들에게 K사무장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사정위원회가 박재일씨의 비리를 비호하는 기구로 전락
본부에서 파견한 사정위원 중에서도 특히 최종순씨는 마산권간부회 석상에서 앞뒤 배경설명도 없이 공개적으로 K사무장에 대한 인식공격을 했다.
“마산권 K사무장은 현지에서는 아주 좋은 인품의 사람으로 되어있지만, 본부간부들 사이에서는 아주 못 쓸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바달다와 같습니다.”
최종순씨는 경멸이 배어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K사무장으로부터 따뜻한 배려를 받고 있던 회원들로서는 최종순씨의 이야기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최종순씨는 회원들의 마음 따위는 살필 겨를도 없었다. 오로지 박재일씨를 의식해서 마산에 파견된 바의 임무를 다했다는 스스로의 위안만이 절실했다. 당시 최종순씨 입장에서는 전국남자부장인 아들 최해성씨가 박재일씨의 수족으로서 일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그 성패가 남달리 절체절명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아들의 안위에 관한 한 과격하고 민감해졌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종순씨로부터 모욕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듣게 된 K사무장은 그 자리에서 항의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본부간부들에게 빈축을 사게 됐는지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K사무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장한 청년 4, 5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내 K사무장을 쓰러뜨리고는 사지를 각각 들고 질질 끌고 가서는 화장실에 던지듯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밖에서 문고리에 대걸레로 빗장을 질러 잠가버렸다. 최종순씨가 참석한 간부회에 앞서 윤채규씨가 파견되어 참석했던 간부회에서 심상찮은 기미를 느꼈던 정병조씨가 미리 요주의 인물 주위에 건장한 청년들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산권 K여자부장이 참다못해 소리쳤다.
“이런 인권유린이 어디 있습니까. 뭐하는 짓들입니까!”
단호하고도 또렷한 음성이었다.

아무리 혼돈의 시대라도 살아있는 양심은 있게 마련
그때 남자부 K씨가 K여자부장에게 달려들었다.
“이XX, 감히 누구한테 S부리는거야!”
K씨는 순식간에 K여자부장의 뺨을 후려쳤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진 듯 정적에 휩싸였다. 오직 남자부 K씨의 거친 숨소리만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한 최종순씨는 겸연쩍은지 멋쩍은 웃음을 보이는 듯하더니 화제를 바꾼 후 신속히 회합을 마무리했다. 장내 회원들은 혼란스럽기만 한 그리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 광경을 마음에 담고 쓸쓸히 돌아가야만 했다.
부이사장이라는 자가 공개적으로 한 회원을 인격 모독하고도 멋쩍은 웃음을 보이고, 청년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사람을 개 끌듯이 끌어내 감금하고, 한 청년이 갑자기 대중 앞에서 무방비 상태의 여성의 뺨을 후려치고도 의기양양할 수 있는 것이 정의란 말인가. 무엇보다도 이 사건에 대한 박덕현이사장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소견은 그날 이후에도 누구 한사람 들은 적이 없었다. K사무장만이 계속해서 “내 잘못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사람 있으면 말해보시오.”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최종순씨 뿐만 아니라 다른 사정위원들에게도 이 사건의 발단이 된 박재일씨의 마산에서의 행동이나 K사무장이 왜 분노했는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박재일씨가 바라는 일처리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임무를 어떻게 충실히 이행할 것인지 만이 중요했다. 그 중 윤채규씨는 한참 후배인 박재일씨한테 잘 보여서 살아남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던 것도 아니다. 평소 그의 이야기대로 ‘소나기는 피해야지’라는 마음에서 덩달아 K사무장을 공개적으로 꾸짖었다. 그런데 그가 두려워하는 소나기를 내리는 먹구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본부건설국장 당시의 행적이고 그중에도 건설업자들과 지켜질 수 없는 비밀을 빚지고 있었던 것을 말한다.
윤채규씨는 마산에 파견되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보시오.”라는 K사무장 부부에게 “이케다선생님이 하시는 일인데 더 무엇을 말하란 말이오.” 라는 식으로 면피하기 바빴다. “이케다선생님이 하시는 일?” 본부남자부장 출신 부이사장의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K사무장부부는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당시 박덕현이사장에서부터 부이사장들까지 그들은 모두 일색으로 경직된 사고에다가 듣는데 미숙하고 말하는데 서툴렀던 사람들이었다.
 그즈음 마산에 파견되었던 사정위원들로부터 보고를 들은 박재일씨는 정병조씨에게 전화를 한다.
“정방면장, 이제 K가 바짝 주눅이 들었을 텐데. 주제 파악을 좀 했겠지……”
“총장님 그게 아닙니다. 아직도 팔딱이고 있습니다. 섣불리 건드린 것 같기도 합니다.”
“정방면장!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안 되지. 정방면장 능력이 여기까진가?”
“총장님 죄송합니다. 진짜 단단히 여기서 해보겠습니다.”
“그렇지.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야지. 회원들이 싫다고 들고 일어나면 K 제 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별수 없잖아.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놈 있나.”
정병조씨는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부터 K사무장에 대한 조직적인 집단따돌림이 시작된 것이다.

 

myungho 10:16 new
성훈에 “법문 때문에 남에게도 적시당하시는 여인이니, 마치 불경보살과 같습니다”(어서 1419쪽)라고 있습니다.
K사무장과 K여자부장의 용감한 행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청년부가 목표로 삼아야 할 언론전의 원점도 불경보살의 정신에 있습니다.

이러한 청년의 용기와 힘이야말로 광포와 개혁의 뇌관이 될 것입니다. 
회원을 지키겠다는 그 힘이야말로 불계의 생명입니다. 불계의 생명은 사제직결의 생명 속에 용출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사제직결의 행동은 무엇일까요?
선생님께 편지로 어려움을 보고하고 결의하고 실천하고
또 어려움을 보고하고 결의하고 실천하는 반복 투쟁입니다. 그 속에 사제직결의 약동이 있습니다.
 
myungho 10:17 new
만약 스승께 편지드리는 그러한 투쟁이 없다면, 나약한 신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도 항상 도다선생님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투쟁하셨습니다.
그 속에 사제직결의 결의가 있고, 맹세가 있습니다.
  myungho 11:24 new
어떻게 선생님께 편지를^^
이런 소극적인 자세는 자신의 성장과 성불을 막는 악(惡)입니다.

 

지금도 ‘1995년 초여름에 생긴 일’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 가슴 가슴에 점화되어

강하게 타 오르고 있습니다.

 
myungho 11:24 new
지금 당장 펜을 잡고 선생님께 편지를 ^^ 
가정일도, 학교일도, 직장일도 학회일도 무엇이든 좋습니다.

자신부터 펜을 드시기 바랍니다.
평생 처음 시도하는 일일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를 기원합니다.
<주소: 日本國, 東京都 新宿區 信濃町 32, 創價學會 池田大作 先生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