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큐(a-z)사이또부장 /<q>방법을 가책하면 어떤 공덕이

(q) 방법을 가책하면 어떤 공덕이 있나,

myungho 2015. 3. 28. 14:54

(q) 방법을 가책하면 어떤 공덕이 있나,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는 훌륭하다고 하지만

법화경(法華經)과 비교(比較)해 보면

형화(螢火: 반딧불)와 일월(日月)과의 승렬(勝劣). 하늘과 땅과의 고하(高下)이니라.

부처를 공양해서 이와 같은 공덕(功德)이 있으니

하물며 법화경(法華經)에 있어서랴.

 

흙 떡을 바치고서 이와 같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이 있으니

하물며 종종(種種)의 과실(菓實: 흙이 아닌 진짜 과실을 공양함)에 있어서랴,

그때(석존 재세 시)는 기갈(飢渴)하지 않았고, 지금은 굶주린 나라이니라, 이로써 생각건대 석가불, 다보불, 십나찰녀가 어찌 수호(守護)하시지 않겠는가”(어서 1544) 

 

 

● 사제의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격려가 벗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지핍니다. 그리고 용기를 불러 일으키고 벽을 부수는 힘을 끌어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격려는 소생의 원천이자 변혁의 문이며 승리의 대도입니다.

 

불교회든 개혁연대든 파벌의식을 버리고 사제의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지펴가야 합니다. 신심만큼은 순수해야 합니다.  

 

위의 우에노전답서는 난조 도키미쓰에게 주신 어서입니다.

도키미스가 이 어서를 받은 건치연간에는 몽고의 재 내습에 대한 공포와 역병의 대유행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한 시기였습니다. 또 스루가 지방의 호조 일문의 박해가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도키미쓰에게 지금은 고난에 찬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 신심으로 반드시 타개할 수 있다’ ‘반드시 숙명전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시고 게십니다.

도키미쓰는 사제의 마음 하나로 순수한 신앙을 관철했습니다.

 

이 어서 첫머리에는 공양의 공덕에 대해 인도에 실제로 존재했던 아소카 대왕의 출생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지성도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아소카 대왕을 들고 있습니다. 

 

● 도키미스의 정성어린 공양이 가져오는 공덕의 크기를 말씀

 

그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로 덕승동자의 설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어서에는 옛날 덕승동자라고 하는 어린 자는 흙떡을 석가불에 공양해 드리고 아육대왕으로 태어나 염부제의 주()가 되어 종국에는 부처가 되었는데”(어서 1380)

 

석존에게 진심 어린 공양을 드린 소년 덕승동자가 그 공덕에 의해 역사에 빛나는 아소카 대왕이 되었다는 설화입니다.

 

여기서 대성인은 ★부처와 법화경, ★흙 떡과 진짜 여러 가지 과일, ★풍요로운 시대와 굶주린 시대라는 세가지 대비로 도키미쓰의 정성 어린 공양이 가져오는 공덕의 크기를 말씀하십니다.

 

석존에 대한 공양보다 법화경에 대한 공양의 공덕이 뛰어난 점을 확신하십니다. 대성인은 그 공덕의 차이는 반딧불과 일월만큼의 승렬”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석존을 비롯해 온갖 부처는 모두 법화경에 의해 성불했기 때문입니다. 법화경 특히 그 간요(肝要)인 남묘호렌게쿄는 모든 부처의 온갖 공덕을 낳게 하는 근본이고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에 대한 공양의 공덕이 뛰어납니다.

 

선생님께서는 법화경에 대한 공양이란, 묘법과 함께 끝까지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혁연대는 악구와 매리 속에서 ‘SGI반대파라는 누명을 쓰고 제명이라는 인격학살을 당하면서도, 20여 년간 파화합승의 집행부를 가책해 왔습니다.  

지금도 사제 직결의 외곬으로 스승을 지키고 조직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개혁연대의 공덕은 어금언에 비추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맺음 말

 

덕승동자가 아소카 대왕이 된 공덕 보다 묘법과 함께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 반딧불과 일월만큼의 승렬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엄연한 생명의 인과법칙에 비춰보면,

개혁연대의 사제직결의 행동이, 장차 무량의 복덕이 되어, 음덕 양보의 꽃을 활짝 피운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신심의 실천에 헛됨은 일체 아무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