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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번뇌즉보리/ 원겸어업 아니면 삼류의 강적 물리칠 수 없어

myungho 2015. 6. 24. 17:28

(189) 번뇌즉보리/

원겸어업 아니면 삼류강적 물리칠 수 없어  

 

 

 

미국 창가대학교, 2015년 5월

 

 

원겸어업의 법리에 대한 교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보살이 사람들을 구하려고 스스로 원해서 악세(惡世)에 태어난다고 설합니다.

 

학회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가

‘SGI반대파라는 날벼락을 맞고 제명됐습니다. 

처음에는 난이 옴을 가지고 안락”(어서 750)이라는 생각으로 의기양양하여 큰소리 쳤는데, 지금은 혼란스럽습니다.

 

제법실상초에 모두 지용의 보살의 출현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이니라”(어서 1360)고 씌어 있습니다. 제목을 부르고 있으니, 어서 말씀 대로라면, 저도 분명히 지용의 보살은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명(除名) 따위는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해야 원겸어업의 법리대로 신심을 할 수 있는지 격려를 부탁합니다.  

 

 

 

끝까지 자신과 싸우고 있는 귀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지에 새싹을 보는 것 같습니다.  

 

● 난세에 영웅, 탁세에 부처의 출현

 

 

삼국지에는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비현덕은 난세의 재난의 원인을 인의(仁義)를 저버리고 이기주의에 빠진 동탁, 조조 등의 간신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불법에서 보는 탁세에 삼재칠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대성인께서는 두려워할 것은 대독사(大毒蛇)·악귀신(惡鬼神)보다도 고보(弘法), 선도(善導), 호넨(法然) 등의 유파의 악지식(惡知識)을 두려워하라”(120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법을 비방한 호넨 등의 악승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 한국의 삼재칠난의 원인은 대독사, 악귀신보다도, 스승을 협박하고 조직을 분열시킨 박재일 여상락 김인수 등의 유파의 악지식입니다.  

 

유비현덕은 난세가 아니었다면 아마 돗자리장사로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역시 탁세에 목숨을 위협하는 병과 가난이 없었다면, 인류의 스승이신 이케다선생님도 만나지 못하고 일개 회사원으로 일생을 마쳤겠지요.

 

삼국지에서는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을 했지만,

대성인께서는 법화경의 행자가 있으면 반드시 삼류의 원적이 있으리라, 삼류는 이미 있으니 법화경의 행자는 누구일 것이 뇨, 찾아서 스승으로 삼으리니”(어서 230) 탁세에 부처가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석존이 받은 난의 의미

 

석존 같은 부처가, 왜 이유 없는 비방을 받아야 했을까요?

이 점에 관해서 석존은 불전에서 그것은 전부 미래의 불도수행자를 위함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신심에 힘쓰는 사람이 미래 영겁에 걸쳐 퇴전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 부처 스스로 난을 받는다, 이것이 부처의 자비입니다.

우리가 현재 맞닥뜨린 여러 가지 난이나 고생도 어느 면에서 보면 모두 말법만년에 걸친 광선유포를 위해서라고 해도 좋습니다. 기나긴 미래를 위해 하나의 원점을 제시해 광포의 도식과 모범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구나, 그 때도 그랬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변하지 않는 난의 구도다. 그러므로 지면 안 된다. 전부 신심으로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싸우자

이렇게 후세의 벗이 거기서 한없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격려를 퍼 올리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 반역자 제바달다가 반역의 마음을 굳히고 교단을 떠나려 , 석존은 재빨리 모두에게 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석존이 미래를 위해 남겨준 참성증상만과 투쟁하는 모범입니다.  

한국도 석존과 같이,

스승을 협박하고, 조직을 분열시킨박재일, 여상락, 김인수의 방법을 폭로해 가야 합니다.  

 

● 부처라 해도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처라고 해서, 모든 번뇌를 없애버린 열반의 모습이나, 32 80종호를 갖춘 색상장엄한 부처를 생각한다면, 이는 소승교에서 설한 방편의 부처이므로 버려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부처라 해도 결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뇌도 있고 괴로움도 있다. 병에도 걸린다. 그리고 마의 유혹도 있다. 그러므로 부처란 이런 마와 끊임없이 싸우고 계속 행동하는 용자를 말한다.”(법련, 15-5, 121)

 

절대적 행복경애란, 어떤 일이 있어도 즐겁습니다. 명성이나 재산이 없어도 만족합니다. 순간순간이 최고로 충실합니다. 기쁨이 가득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어떤 것을 봐도 금세 정사(正邪)를 구별하고 본질을 압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생각할 줄 압니다.

그런 자신이 됩니다”(법련, 15-6, 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석존도 십계호구의 생명입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에서 보리의 경애를 부처라고 합니다.

 

노력 없는 금메달이 없듯이,  번뇌에 의한 단련 없는 깨달음도 없습니다.

 

금메달의 미면에는 피나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듯이, 부처라는 경애에도 번뇌에 의한 단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련은 생각치 않고, 부처라는 결과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자신이나 가족의 병, 또는 죽음, 경제적 어려움, 인간관계의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등 살아있는 한 도전해야 할 과제와 괴로움이 많습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신심과 제목은 그러한 것을 모두 변독위약하는 힘입니다. 괴로움이라는 독을 행복이라는 약으로 바꿉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로 괴로움이 깨달음으로 바뀌고 행복으로 바뀝니다. 괴로움이나 슬픔이 클수록 더 큰 행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목의 힘입니다”(법련, 15-6, 127)

 

도다 선생님도 나 도다는 아내를 잃고, 딸까지 먼저 보냈다. 사업도 실패했다. 그런 고뇌를 알기에 창가학회 회장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법화경을 위해 악구매리를 받아 온 개연대야말로 한국을 이끌어 갈 사명의 주인공입니다. 

 

고생도 하지 않고 괴로움도 없다면 민중의 마음을 알 리 없습니다.

인생의 쓰라림을 맛본 사람만이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 원겸어업은 경애혁명

 

원겸어업은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일념의 전환을 가르칩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메리스로 돌아가신 부모님 전에 올린 자식의 글에 또다시 태어난다 해도 어머님의 자식으로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숙명이라는 수동적인 차원을 넘어 선 경애가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는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소개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불가촉천민(인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고 싶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받는 모멸을 함께 나누며, 괴로운 경애에서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원겸어업에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비입니다.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태어납니다. 부처는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불법은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있습니다”(법련, 15-6, 135)

 

● 맺음 말

 

지용보살은 법화경 용출품에서

대지 밑바닥에서 나타나 말법의 광선유포를 서원했습니다. 지금 맞닥뜨린 어려움은 신심의 눈으로 보면 스스로 원한 사명입니다.

 

숙업 같은 것에 얽매여 마음이 비참해지면 일체가 패배입니다”(법련, 15-6, 119) “자신의 괴로움을 업()으로만 받아들이면 소극적이 됩니다”(위의 책, 135)  

니치렌 불법의 투철한 실천은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난의 의미를 완전히 바꿉니다.

그것은 사명을 위해 떠 안은 괴로움

나는 이 괴로움을 신심으로 극복하겠다고 법화경 회좌에서 지용보살의 이름으로 서원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이 궁극적인 불법의 진실을 생명 깊이 체득한 사람들이 한국의 개혁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지용보살의 각오가 없으면 삼류강적을 물리칠 수 없다”(법련, 15-6, 117)고 말씀하셨습니다.  

 

숙업 같은 것에 얽매인 인생에는 부처의 약동하는 생명은 없습니다.

발적현본 속에 부처의 생명이 약동합니다.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도 한탄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맞선다.

이 사자왕의 마음을 발휘하여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고, 위대한 인간혁명의 승리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 우리 구원의 동지가 간직한 위대한 경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