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공명당/(220)공명당 참성으로 매도해도 되나

(220) 공명당을 참성으로 매도해도 되나?

myungho 2015. 10. 6. 07:07

(220) 공명당을 참성으로 매도해도 되나?

 

 

 

 

 

 

공명당이 참성이라니?

이케다 선생님도 언급하지 않은 사안(事案)공명당 삼류의 강적으로 등장이라니, 이런 식으로 나서면 어떡합니까?

 

아무리 공명당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선생님이 공명당에 대해 언급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그러나 소리에는 위의 소리와 아래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능동의 소리와 수동의 소리도 있습니다. 아래의 소리를 국민의 소리라고 합니다.

한국의 조선조 시대에는 신문고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위도 아래도 없이 모두 존경해야 한다. 윗사람은 아래 사람을 지켜야 한다. 아래 사람은 윗사람을 야단칠 수 있다. 그것을 한국은 꺼꾸로 해왔다.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 있는 사람에게 정말로 상냥하게,

아래 있는 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에게 불평불만을 말해도 된다.”(한국95사태 5.15지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부라면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말씀입니다.

 

● 아래 내용은 법화경의 지혜, 3 157-159쪽의 내용입니다.

 

여인에 대한 수기가 끝나자 보살들은 석존 앞에 나아가 합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법화경을 수지하여 넓히라고 명령하신다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이 법화경을 넓히자

 

그런데 부처는 침묵하고 있다. 부처님은 잠자코 계신다. 아무런 명령도 해 주시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서 보살들은 결심합니다. 부처님의 마음에 보답하자나의 본래 서원에 살아가자,

그리고 소리 내어 맹세합니다. 저희들은 석존이 입멸하신 후, 악세 중에서 시방세계에 이 법화경을 넓혀가겠습니다’ <중략>

 

제자들의 진지한 맹세, 기세를 나타내는 것이 유명한 사자후(獅子吼)를 일으켜”(법화경 440)라는 경문입니다.

사자후를 일으킨다 란 말법에 있어 남묘호렌게쿄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으킨다능동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으로는 사자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석존은 잠자코 제자를 주시했던 것입니다.

스승은 외치고 있다. 다음은 제자가 외치는가 아닌가 입니다.

그것을 스승은 지그시 응시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 수동적으로는 사자후가 되지 않아

 

한국의 95사태를 예로 들겠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 “일본은 예전에 한국을 괴롭혀왔다. 그것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SGI로서는 한국의 은혜를 갚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작은 경위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한국 청년부에게 진상규명 하여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한 회원들의 인권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박재일은 제멋대로 불제자를 해임이나 제명시킬 자격은 없다. 그렇게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이케다 문하들을 무차별적이고 불명예스럽게 퇴출시킨 범죄행위”라고 엄하게 가책하시며 범죄자임을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승의 사자후입니다그러나 5.15지도 후 15년이 지났지만, 개혁연대와 집행부는 분열된 상태 그대로입니다

2013 10월 선생님께서는 김인수씨가 이사장이 되자 그에게 기대를 걸고 하세가와 부회장을 한국에 보냈지만 그도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형식적인 만남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95사태 15“수동적으로는 사자후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증명입니다. 아무리 신한위, 53그룹, 선의연대가 있고, 법련과 같은 창가지와 화광신문과 같은 창가타임스가 있어도 수동적으로는 사자후가 되지 않습니다

사자후란 목숨을 거는 것이지요. 부석신명입니다. 


일본의 공명당 사건도제자들이 능동적으로 일어 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을 불법에서는 발적현본이라고 합니다.

 

● 맺음 말

 

법화경의 지혜에는 ‘부처님은 잠자코 계신다. 아무런 명령도 해 주시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여기서 보살들은 결심합니다.

‘부처님의 마음에 보답하자’ ‘나의 본래 서원에 살아가자(3, 157)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마음에 보답하자’라는 것은 인류의 스승이신 이케다 선생님 마음에 보답하는 것이고, ‘나의 본래 서원에 살아가자’는 것은 지용보살이 법화경회좌에서 맹세한 민중구제의 서원입니다.

 

중요한 내용이라 한 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일으킨다’란 ‘능동’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으로는 사자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석존은 잠자코 제자를 주시했던 것입니다.

스승은 외치고 있다.

다음은 제자가 외치는가 아닌가 입니다.

그것을 스승은 지그시 응시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젊은 난조 도키미쓰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화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라”(어서 156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석신명이기에 창가사제는 승리했습니다. 사신홍법이기에 학회는 왕자입니다.

 

선생님은 ‘한국의 95사태’와 ‘일본 공명당의 안보법안 처리’를 지켜보시며

제자들의 사자후를 기다리고 게십니다.

갈퉁 박사도 사자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사자후 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