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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5.15지도의 실천은 전대미문의 싸움

myungho 2016. 11. 21. 16:30

(371) 5.15지도의 실천은 전대미문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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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승리를 믿었다자신은 순교자가 되어 사라지지만마지막에는 정의가 승리할 것을

그리고 이 순교가 자기 자신의 영원한 재생과 

사랑하는 프랑스나 인류의 재생에 이어지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람/

제가 힘이 빠져 고민하구 있을때 부인부(婦人部)인 아내가 그러더군요시작했으면 끝을보라구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신념의 길을 가라고 

 

민초/

마이클님, Rmsrl바람님죽비소리님사노라면님반담용녀님이충희님찻잔속의 폭풍님 안녕하시죠조직에서는 신뢰를 쌓아 이분 말이라면 할 정도로 신뢰를 쌓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직에서 신뢰는 쌓는 것은 집행부에게 잘보이려고 하는 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신심은 어서근본 선생님 대 나에 신심이니가요. 

그 다음 5.15지도를 어떻게 알려 나갈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겠죠.

지금 시점에서 참성를 전회원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지혜를 한곳으로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람/

최근 상황을보면 소위 개혁하시는분집행부가 바뀌기을 바라는분 윗글에서 민초님께서 거론하신 분님들 포함해서 아주 크게 착각 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직에서 신뢰받고 지용보살의 사명을 해나가는것 당연한것이고 그렇게 하는것을 잘못 됐다고 말하는사람 아무도 없습니다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이충희님처럼 또몇몇 분처럼 집행부 간부들에게 직접 카톡 또는 메시지로 질문하고때론 가책하고 하는 용기있는행동까지도 잘못된 방법이라고 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않으면 더욱 기고만장 할 것입니다.

 

민초/

차부장님 정리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5.15지도에서 

“(한국의 95사태는) SGI회원국 가운데에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5지도의 실천을 위한 투쟁은 길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전대미문의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어려움도 많을 것입니다.  

 

● 바람/ 제가 힘이 빠져 고민하구 있을때婦人部인 아내가 그러더군요시작했으면 끝을보라구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신념의 길을 가라고

 

대성인께서는 “두 분은 은사와 열사와 같으니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성취하지 못하느니라.(어서 1088)라고 말씀 하셨습니다아무리 잔소리를 하고바가지를 긁어도 내조의 힘만큼 강한 것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풍 속에 언제나 새벽까지 창제하며힘이 되어 준 아내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민초/ 조직에서는 신뢰를 쌓아이분 말이라면 할 정도로 신뢰를 쌓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그 다음 5.15지도를 어떻게 알려 나갈 것인가하는 문제가 남겠죠.

 

법화경을 설한 석존은 어떻게 했을까요신뢰를 쌓고 악마를 항복시켰을까요아니면 악마를 격퇴하면서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아래 내용은 법화경의 지혜, 4, 228쪽의 내용입니다.

 

<나카무라 하지메 박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악마를 격퇴하고 나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악마를 항복시키는 것과 깨달음을 얻는 것은 동일한 사실의 표리관계에 있다”(고타마 붓다) 

 

부처가 되는 것은 유혹을 물리친다는 행위 그 자체 속에서 찾아야만 한다부단한 정진이 그대로 불도수행인 것이다깨달음을 열어 부처라는 별개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같은 책)

 

불계란 묘법과 일체가 된 경지이며 부처란 묘법을 스승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묘법을 끝까지 수지하는 경지 자체가 불계입니다석존은 성도한 직후에 묘법을 스승으로 하여 계속 살아갈 것을 맹세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법을 깨달았다그 법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의지하도록 하자”(앞 책)

그리고 그 말대로 생애를 완수했다”>

 

★ 깊이 사색해 보시기 바랍니다깨달음을 열어 부처라는 별개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부단한 정진이 그대로 불도수행인 것입니다.

 

● 민초/ 지금 시점에서 참성를 전회원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지혜를 한곳으로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법화경의 지혜 3 193-195쪽의 내용입니다.

무지·악인이 국토에 충만할 때는 섭수를 우선으로 하니 안락행품(安樂行品)과 같으며 

사지·방법의 자가 많을 때는 절복을 우선으로 하니 상불경품(常不輕品)과 같으니라

말법(末法)에 섭수·절복이 있으니 소위 악국·파법의 양국이 있기 때문이니라일본국의 당세는 악국인가 파법(破法)의 나라인가를 알지어다.”(어서 235)

 

섭수 절복에 대해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대전제로서 말법에 남묘호렌게쿄를 설하는 것은 모두 절복입니다나의 몸을 아끼지 않고 묘법을 말해 가는 절복정신이 근본이라고 한다면,

상대의 잘못을 파절하는 것도또 상대의 생각을 포용하면서 진실을 설하는 것도 모두 좋은 것입니다

 

양쪽을 잘 사용해 가는 지혜가 중요합니다법사품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절복이란 진실을 끝까지 말해 가는 것입니다성실하고 진실하게 상대의 행복을 바라며 불법을 이야기해 가면 모든 것이 절복으로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사견에 물들어 욕설을 한다면 파절을 앞세우는 것이 당연합니다파절을 잊는다면 대성인의 제자가 아닙니다악에 대한 파절이 없어진다면 창가학회의 혼은 없습니다.”

 

★ 민초님의 말씀대로 지혜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 바람/ 최근 상황을보면 소위 개혁하시는분집행부가 바뀌기을 바라는분 윗글에서 민초님께서 거론하신 분님들 포함해서 아주 크게 착각 하시는 것 같습니다. (중략)

문제는 이충희님처럼 또몇몇 분처럼 집행부 간부들에게 직접 카톡 또는 메시지로 질문하고때론 가책하고 하는 용기있는행동까지도 잘못된 방법이라고 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이렇게 하지않으면 더욱 기고만장 할 것입니다.

 

대저 섭수(攝受)·절복(折伏)이라 하는 법문(法門)은 수화(水火)와 같아서불은 물을 싫어하고 물은 불을 미워함이라. (중략사지(邪智)·방법(謗法)의 자가 많을 때는 절복(折伏)

 우선으로 하니 상불경품(常不輕品)과 같으니라”(어서 235)

당연히 5.15지도의 실천은 절복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자세야 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맙게도 죽비소리님이 이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2006 6 30일 전국 총현장회의 메시지>를 올려주셨습니다.

메시지에는 넬슨의 지도자상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그는 영국 국민의 영웅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은 고결한 인격을 지닌 리더였습니다

 

“넬슨은 존경받았지만 그것은 아마 넬슨 자신이 부하들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넬슨은 설사 아무리 태생이 비천하고 교육을 못 받은 해병조차도 놀랄 정도로 충성과 용기를 보여줄 능력이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넬슨은 부하 일동에게 헤아릴 수 없이 가치가 있는 선물을 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긍지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긍지였다.

 

(부하들에게 최고의 결과를 요구하여부하들이 그것에 부응해 주면 넬슨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책임은 자신이 지고 공적은 서로 나누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하들은 충성과 애정으로 넬슨에게 보답한 것이다.”라고.

 

참으로 중요한 지도자의 요체입니다모두가 5.15지도를 실천하면서 이렇게 고결한 인격을 지닌 인재로 성장해 가기를 기원합니다.

 

● 맺음 말

 

맺음 말은 이케다 선생님의 저서 <혁명의 푸른 하늘>의 일부분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둠과 함께 깊이 침묵해 버린 감옥의 벽은 으스스하고 무겁게 마음에 덮쳐온다.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게 된다.

어지럽게 술렁이는 마음속에서 이 눈앞의 운명을 극복하려면가까운 죽음보다도 더 멀리보다 높이 응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승리를 믿었다바로 자기 자신은 순교자가 되어 사라지지만,

마지막에는 정의가 승리할 것을그리고 이 순교가 자기 자신의 영원한 재생과 사랑하는 프랑스나 인류의 재생에 이어지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집행부의 개혁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각오도 이러한 마음일 것입니다

 

여기서 처형대까지는 이제 단 한발짝 남은 것이나 마찬가지다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온 힘을 다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환희를한 시인이

자기 나름대로 훌륭하게 살았다는 복받쳐 오르는 미소를

생애를 마치는 날을 위하여 소중히 간직해 두자

 

그때까지 아무리 짧더라도 내 생명인 시작(詩作)을 그만두지 않겠다.

갖가지 당파가 생사를 걸고 서로 뒤엉켜 싸운 이 짧은 세월에 자기에게 충실하게 살려면 순교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을 비운으로 보느냐 특권으로 보느냐는 그의 마음에 달려있다.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킨 삶을 사는 것,

그것은 신앙과도 비슷한 신념의 빛이었다.>

 

日蓮의 제자들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어서 1282

불교회가 파벌이 되어 싸우는 이 짧은 세월에 자기에게 충실하게 살려면 순교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인공의 말이 가슴을 고동치게 합니다. 

겁쟁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