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학회 언제부터 잘못되었는가의 답글
이 글이 닛다쓰상인 예하님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용이
몹시도 권위적이고 경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페 <http://cafe.daum.net/allksgi> “한국SGI*불교회” 자유게시판에 <창가학회 언제부터 잘못되었는가1>라는 제목으로, 닛다쓰상인 예하의 어지남, 총본산 대강당에서(1979.4.31)라는 글이 올라 있습니다.
이 글이 닛다쓰상인 예하님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용이 몹시도 권위적이고 경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케다 선생님에게 확인도 되지 않은 제 삼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하님이라면 이렇게 경솔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불의나라’라는 소책자에 창가학회의 어떤 사람이 출판하였는데 그 책에는 분명히 ‘회장은 부처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창가학회의 교수 혹은 교수보 같은 사람이 어서강의를 하며 ‘회장은 부처님’이라고 말했다.” “총이란 혈맥상승이며 재차로는 이케다 회장이며 신심의 대스승인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째서 총이 혈맥상승인지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 “창가학회에 혈맥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 “이 경의 마음을 아는 승려는 대성인이고 현재에 있어서는 이케다 회장이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고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입정안국님은 예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위의 문장에 대해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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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가학회에 혈맥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답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신심의 혈맥이 없이는 법화경을 가질지라도 무익하니라”(어서 1338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혈맥은 어디까지나 신심의 혈맥입니다.
‘함부로 하고 있다’라는 말은 신도를 깔보는 말씀입니다.
어서 근본이 아닌 오만과 만심의 말씀입니다.
● “창가학회의 교수, 혹은 교수보 같은 사람이 어서강의를 하며 ‘회장은 부처님’이라고 말했다.”라는 내용의 답입니다.
왜 ‘회장은 부처님’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대성인께서는 “대저 지옥과 부처는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찾아보면, 혹은 지하라고 하는 경문도 있고, 혹은 서방 등이라 하는 경문도 있소이다. 그러나 자세히 찾아보면 우리들의 오척의 몸 안에 있다고 쓰여 있나이다”(어서 1491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계나 불계라고 해도, 땅 밑이나 서방 극락 세계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 속에 있다고 나타내셨습니다.
돌아가신 도키미스의 아버지 효에시치로에 대해 대성인께서는 “살아 계셨을 때는 생(生)의 부처, 지금은 사(死)의 부처, 생사 다 같이 부처이니라.”(어서 1504)
“법화경의 제4에 가로되 ‘만약 능히 수지하는 일이 있으면 즉 불신(佛身)을 갖느니라’운운”(같은 어서 같은 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누구든 법화경을 수지하면 불신(佛身)이라는 말씀입니다. “회장은 부처님”이라는 말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종문의 승려들은 서방극락정토에 가야 만 부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염불종의 생각입니다. 염불은 무간입니다.
● “이 경의 마음을 아는 승려는 대성인이고, 현재에 있어서는 이케다 회장이라고 말한다.”라는 내용의 답입니다.
어서에 “청은 남에서 나왔지만 거듭하면 남보다도 색이 짙어진다”(어서 1221쪽)라고 있습니다. 종람이청입니다. 제자가 스승보다도 뛰어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대성인의 마음입니다.
예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누군가 이케다 선생님을 음해하기 위해 올린 글입니다. 질투이고 심술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이러한 자의 제자단나가 된 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하여 니치렌과 동일하게 법화경을 넓혀야 하느니라”(어서 90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과 동일하게 일어서라’입니다.
이러한 자각을 갖고 이 시대에 일어서신 분이 이케다 선생님입니다.
숙연이 깊다는 것은 삼세에 걸친 불법의 사제가 지닌 깊은 연을 자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신도들의 눈은 예리합니다.
승복만 걸쳤다고 승려가 아닙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니치렌 불법을 신봉한다는 승려가, 부처는 시방극락 정토에 가야 만날 수 있다던가, 스승의 마음인 “종람이청”도 모르면서 광포에 앞장서는 사람을 질투하고 험담한다는 것은 수준 이하입니다.
종문에서는 승려가 되기 위한 공부나 시험도 없는 것 같습니다.
● 맺음 말
입정안국님은 처음부터 법론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유언비어로 학회를 교란시켜 보자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중이 고기맛을 알면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중이 돈과 권력의 맛을 알았으니, 민중 구제에는 관심이 없고, 신도들만 고달프게 되었습니다.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어서 1361쪽) 신도님들도 노예처럼 굴종만 하지말고, 행학의 이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직결의 정신으로 정사를 간파하는 힘을 갖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