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존이 제바에게 승리했기 때문에 선지식
차명호 님께!
차명호님의 99번째의 글까지 보면서 제가 느낀 점을 올립니다
차명호의 답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답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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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크게 나눠서 불교의 內道와 나머지 기복신앙의 外道라고 합니다. 기독교 등의 외도는 참으로 믿기가 쉽습니다. 자신 생명 밖에서 어느 누군가가 문제도 답도 해결해 준다 하니 믿고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즉 제법실상이 아니지요. 제법 따로 실상 따로 제법인 나는 도저히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佛敎는 법화경 방편품의 제법실상이 핵심입니다
제법즉 우리의 구계의 생명 속에 실상즉 부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佛性을 개불지견 자신의 생명에 내재된 것을 나타내라, 밖에서 찾지 말라 하는 것이 부처님의 부탁이요 명령일 것입니다.
그런데 불도 수행을 하는 사람들의 작금의 모습을 보면 문제도 답도 자신의 생명 안에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문제도 답도 모두가 상대방에게 있다는 수행의 모습을 봅니다. 저 역시도 수없이 많은 계도수정을 하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佛意에 맞는 수행을 할까 라고요
답변// 제 생각도 귀하의 생각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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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목초 291쪽에는 道心이 있는 사람들은 편당을 버리고 自他宗을 다투지 말 것이며 사람을 경멸하는 일 없을 지어다, 라고 어본불님께서 훈계하십니다 어서 근본 신심근본 하면서 막상 자신들은 어서 대로 실천을 하지 않으면 곤란할 것입니다
제가 서두에 장황하게 나열한 것은 차명호님께서 남의 카페의 글을 부분만 복사해다 사견을 늘어 놓으신 것을 보고 실망스러워서 입니다. 어느 분이 법체의 혈맥과 신심의 혈맥에 대해서 질의를 해서 답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차명호님께서는 부처님의 법이 근본이 아닌 세법 외도의 잣대로 글을 나열해
놓아서 글 쓰기 싫어한 제가 생각 끝에 올립니다
답변// 실망스러웠다면 미안합니다.
그러나 사견을 늘어 놓았다는 말씀은 이해가 안갑니다.
어서 말씀과 연관이 없는 사견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투지 말 것이며 사람을 경멸하는 일 없을 지어다”(어서 291)라는 어서의 말씀을 침묵하라는 말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의 불성을 예배하기에 절복하고, 방법을 책하고, 법화경을 설하는 것입니다.
“日蓮은 절복(折伏)을 본(本)으로 하고”(어서 867쪽)
“가책(呵責)하는 자는 이는 나의 제자(弟子)이고”(어서 236쪽)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할지니라”(어서 13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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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을 목표로 수행하는 자는 법체의 혈맥과 신심의 혈맥에서 벋어나면 허망하게 될 것이고 수행은 삼세를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이 허망해 진다고 합니다.
답변// 법체의 혈맥과 신심의 혈맥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닛켄은 학회를 파문시킨 방법자입니다.
그러니 종문에서 법주라고 말하는 닛켄의 방법부터 가책하라는 말씀입니다.
방법자를 보고 법주라고 딸자고 한다면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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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목초에 어본불님께서 삼세의 因果를 알지 못함을 비유해서 우리들 범부가 과거세를 알지 못함은 자신의 등을 보지 못함과 같고 미래세를 알지 못함은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함과 같다 라고 지남 하십니다
답변// 제바달다가 전생의 석존의 스승이었듯이,
닛켄이 전생에 우리의 스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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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제희 부인과 아사세왕 과의 인과관계 석존과 제바달다의 인과 관계를 잘 사색해 보시지요. 일왕으로는 모두가 제바달다만 나쁜 놈이라 하지만 제바달다는 전생의 석존의 스승이었지요
답변// 제바달다는 전생의 석존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나 묘법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제바는 妙法蓮華經의 별명이고 과거의 시(時)에는 아사선인(阿私仙人)이니라, 아사선인이란 묘법(妙法)의 이명(異名)이고”(어서 744쪽)
석존도 근원의 묘법을 스승으로 하여 성불했습니다.
그렇다면 묘법인 어서를 공부해야 합니다.
석존은 제바달다의 악행을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제바달다를 구하기 위해 석존은 어떤 실천을 하셨습니까? 실천이라는 행동이 중요합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위하여는 제바달다야말로 제일의 선지식(善知識)이로다.
지금의 세간(世間)을 보건대 사람을 잘되게 함은 자기 편보다도 강적이 사람을 잘 되게 하느니라”(어서 917쪽)
석존이 제바에게 승리했기 때문에 선지식입니다. 만약 악에 졌다면 제바가 선지식이었다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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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끼기에는 처명호님께서는 박재일 전 이사장에게 당한 것을 놓고 지금까지 자신의 숙업의 문제로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법실상의 십여시는 생명 외부의 緣을 보고서 생명 내면의 因을 깨달으라 하십니다.
답변// 대성인은 “니치렌도 이렇게 책을 당함은 선업(先業)이 없지 않음이라. 불경품에 가로되 ‘기죄필이’등 운운, 불경보살이 무량의 방법자에게 매리타척 당한 것도 선업(先業)의 소감이니라.”(어서 958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성인은 자신의 법난을 선업(先業: 숙업)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어서>에서 ‘왜 난을 만나 괴로워하는가? 그것은 나 자신의 숙업 때문이다’라고 대성인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응시해 가십니다.
그것은 모두 난으로 괴로워하는 문하들을 위한 것입니다.
박재일씨의 문제를 숙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신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심 하지 않았다면, 포기했거나,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해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숙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서 말씀을 근본으로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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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緣만 나쁘고 자신은 억울하게 당했다 하면서 내면의 因을 부정하는 것은 외도의 법이지 佛法은 아닙니다. 緣을 통해서 因을 자각하면 감정이 아닌 감동의 생명에서는 법이 가동이 될 것입니다
답변// 제가 감정인지 신심이었는지는 저에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내면의 인(因)을 부정했다면, 퇴전했거나, 신심이 아닌 물리적인 방법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가책(呵責)하는 자는 이는 나의 제자(弟子)이고”(어서 236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어서 말씀대로 가책이라는 실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갑정이 아닌 감동의 생명에서는 법이 가동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법이 가동되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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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명에서는 佛 보살 제천선신이 大火 속도 지나서 大石도 뚫고 와서 문안 드린다 라고 개목초에 설하십니다
어느 책에서 봤습니다 고양이가 배가 고파 살려고 먹었는데 죽었다 합니다. 왜 일까요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먹었다네요. 실이든 부실이든 언질은 생명의 독약입니다.
독기심입 실본심고 지요 유다원질입니다.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부처님의 어지남을 거역할 것인가요? 상대방을 경멸하는 것은 상대방 생명의 불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생명의 佛性을 경멸하고 불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됩니다.
답변//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어지남을 거역했다고 하셨는데,
상대가 불교회에서 부정부패를 일 삼고, 회원들의 인권을 유린 당하고 있을 때, 귀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성인께서는 "진에는 선악에 통하는 것이니라"(어서 58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도 “사악에 대한 분노 없이 정의를 지킬 수 없다. 민중을 지킬 수 없다. '분노는 선악에 통하는' 것이다.”(루쉰 선생을 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깊고도 철저하게 노여워하지 않으면 '변혁'은 이룰 수 없다”(악인을 존경하고 선인을 박해하는 어둠의 사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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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싫고, 선은 좋고/ 번뇌는 싫고, 보리만 좋고/ 구계는 싫고, 불계만 좋고/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생명은 佛法이 아닙니다
번뇌즉 보리 선악일여 생사즉 열반 구계즉 불계가 佛法이지요
답변// ‘번뇌는 싫고, 보리만 좋고’ 이런 것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요?
당연히 번뇌즉 보리가 불법입니다. “즉의 일자는 남묘호렌게쿄이니라”(어서 732쪽)
불계를 용현시키기 위한 신행학의 신심입니다. 절복이 중요합니다.
“日蓮은 절복(折伏)을 본(本)으로 하고 섭수(攝受)를 적(迹)이라 정함이니”(어서 867쪽)
“성불하려면 내부의 악에 철저히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외부의 악과 싸워 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니치렌이 부처가 되는 제일(第一)의 우배(友輩)는 가게노부, 법사(法師)로는 료칸, 도류, 도아미다부쓰와 헤이노사에몬노조, 고도노가 아니었던들 어찌 법화경의 행자가 되었으랴 하고 기뻐하노라”(어서 917쪽) 대성인도 악과 싸우셨습니다.
악과 싸움으로써 생명이 단련되고 정화되고 성불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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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언질의 독을 멈추시고 법의 정사를 정립하시고 어본존 제목 不死의 양약을 많이 드시고 볶은 씨앗이 싹이 트고 깨진 돌이 합쳐지며 고목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듯이 부처가 된다고 하시는 개목초의 금언을 상기하십니요.
성불을 원하신다면 수행자의 행동만 보지 말고 그 생명의 불성을 꼭 볼 수 있는 경애가 되십시오.
답변// 불성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상대의 불성을 보았으면, 귀하께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경보살은 절복을 시작했습니다.
“불경보살이 악구매리(惡口罵詈)당하고 장목와력(杖木瓦礫)으로 맞은 것도”(어서 1000쪽)
이 말씀은 대성인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불경처럼 닛켄의 방법을 가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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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전두환 전대통령이 수 많은 민중을 죽이고 하극상으로 집권을 했지만 대한민국 12대 대통령으로 인정은 하지요.
御書에도 걸왕 주왕의 예를 듭니다. 이 두 악왕의 악정은 익히 잘 아시지요
걸 주 왕이 죽은 후에 제일 치욕적인 욕이 애라 걸주 같은 놈아 였다지요. 지금의 우리에게 애라 히틀러 같은 놈아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옛 중국 당대의 걸 주의 왕으로는 인정하는 것입니다
조직논리에서 탈피해서 법의 논리 생명의 논리에 돌아서야지 佛意에 맞는 수행으로 이어 질 것입니다. 어떤 것이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것인가는 자명합니다.
지금 못 바꾸면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다음 생까지 업 상속만 있겠지요
답변// 귀하는 서두에서 제법실상을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제법실상초〉에서 이 십여실상의 근본 의의를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답하여 말하면 (제법실상의 글은) 아래 지옥부터 위로 불계까지 십계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당체가 모두 일법도 빠짐없이 묘호렌게쿄의 모습이라는 경문이다.”(어서 1358쪽, 통해) 십여실상의 글이 나타내는 뜻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모든 생명(제법)이 모두 묘호렌게쿄의 모습(실상)이다.’ 입니다.
조직논리가 따로 있고, 생명의 논리가 따로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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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대국을 보면 당일에 승부를 못 내고 다음날 그대로 놓고 시작하지요. 來世에 제로에서 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제넘는 글이라 생각만 하지 마시고 참고 하셨으면 합니다
佛意에 맞는 수행을 기원합니다
日月淸淨 드림,
맺음 말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21에서, 지용의 보살은 멸 후 사바세계에서 법화경을 홍통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원겸어업입니다.
원겸어업은 수동적인 인생에서 활동적 자발적 능동적인 인생으로의 전환입니다.
타인을 성불로 이끌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여 어렵고 힘든 환경에 스스로 원해 태어났다고 하는 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어떠한 대선(大善)을 만들고 법화경을 천만부 읽고 서사(書寫)하며 일념삼천의 관도(觀道)를 득(得)한 사람일지라도 법화경의 적을 책하지 않는다면 득도하기 어렵도다”(어서 149쪽)
닛켄의 방법을 책하는 것이 득도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