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풍의 95년, 41- 133/<117>문창극· 종교를 먹이로한 중세

(117) 문창극, 종교를 먹이로 했던 중세 암흑시대

myungho 2014. 6. 22. 07:58

 

문창극 종교를 먹이로 했던 중세 암흑시대/

나에 대한 언론보도 진실 아니다.  

 

 

  

 

【서울=뉴시스】안호균 기자 조인우 인턴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0"언론에 보도된 것은 진실이 아니다"라며 자신에 대한 언론 보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문 후보자는 이날(2014.06.20) 오전 9시 께 서울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에 출근, 취재진 앞에서 "일방적으로 (내가) 말한 것이 막 보도되니까 내가 얼마나 서운했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문 후보자는 '정치권의 사퇴 요구에 대해 서운함은 없냐'는 질문에 "서운하지 않다""언론에 보도된 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그것을 통해서만 나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문 후보자는 이날도 자신의 과거 발언과 칼럼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이 중요한 것이다"라며

 

"그 것(언론에 보도된 자신의 발언) 자체는 사실이지만 전체 문맥으로 보면 다른 의미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문 후보자는 예정대로 청문회 준비를 하겠다는 의사도 재차 강조했다.
 

 

● 문창극 후보의 교회 발언이 논란입니다.

 

문 후보자는 "언론에 보도된 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회 발언이 논란입니다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식민지배,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

윤치호는 몇 년간 친일은 했어도 기독교인이니 좋은 사람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 등입니다.

 

● 성직자가 종교를 먹이로 했던 중세 암흑시대

 

정치도, 교육도, 경제도, 인간을 위해 있듯이 종교도 인간을 위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식민지배,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어떤 행위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사회는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되고 말 것입니다성직자가 종교를 먹이로 했던 중세 암흑시대의 마녀사냥 등이 이를 극명하게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정신의 지배자로서, 지상의 지배자인 영주와 결탁해 유럽의 민중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생활도, 정치도, 사상도, 문화도 모든 것이 신 아래 있다고 생각되어, 교회의 권위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시대입니다.

 

당시 교회가 신으로 둔갑하여, 속죄를 면제할 수 있다고 해서 면죄의 증서 즉 악명 높은 면죄부가 다량으로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성서에도 없는 죽은 자에게도 면죄부가 유효하다는 거짓으로 민중의 고혈을 착취했습니다.

 

역사에는 당신들의 가까운 친형제들이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다오, 무서운 고통에 처해 있다. 그저 조금의 헌금으로 우리들을 되살 수 있는 것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조금의 돈으로 그들을 구제할 수 있다. 돈이 현금상자 속에서 쨍그렁하고 소리를 내면,

 

죽은 자의 혼은 연옥의 불길 속에서 뛰어나와 천국으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교묘하게 면죄부를 강매했습니다.

 

만약 도리를 파괴하는 문창극 후보자와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식민지배,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교만한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종이 된 신도들을 마음대로 속이고 멸시하며 속박할 것입니다.  

 

● 종교에 의해 인간을 신분이라는 틀에 집어 넣었던 중세

 

당시 민중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는 신분제도에 꽉 짜여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성직자는 위, 신도는 아래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엄한 서열을 근본으로 절대자인 신의 다리에 황금의 쇠사슬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양반과 쌍놈이라는 신분계급에 묶여, 인권이 유린된 체 노예로 살아야 했던 봉건사회인 이조시대가 있었습니다제도라는 단단한 틀에 끼워져 창살없는 감옥과 같은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성직자는 자신들이 민중으로부터 경멸 받은 만큼 타락해도, 기독교에 근본을 둔 이 신분사회가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해방하는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13세기 말에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입니다. 그리고 1517 10월 당시 빝텐바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마틴루터가 교회의 부패에 대해 종교개혁을 위해 투쟁한 것도 유명합니다.

 

● 르네상스 운동에서 배우는 교훈

 

르네상스, 그것은 기독교의 무거운 신앙의 쇠사슬에 연결된 중세 유럽사람들이, 자신이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인간의 가치, 빛나는 매력,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한 시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1) 인간이 개인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사람은 국가, 단체, 가정의 일원으로서 밖에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개성에 눈을 뜨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얼굴로서 역사에 등장해 옵니다. 신의 종이나 군주의 노예가 아닌 자신에 의한 자신의 발견입니다.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가, 어떻게 생각했는가, 자신의 역사를 남기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민의 전기가 엮어지고 다수의 초상화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학회의 입장에서 말하면,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광선유포라는 무대의 주역이고 창가르네상스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증명입니다. 이렇게 많은 민중이 역사의 주역인 시대는 없었습니다. 주권재민의 시대입니다.

 

(2) 현실의 삶을 구가했습니다.

천국만을 꿈꾸는 동안은, 현실의 생활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다 훌륭하게 살아가는 것에는 무관심이었습니다. 현실은 천국으로 가기 위한 방편’ 즉 임시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이 현실을 어떻게 사는가에 눈을 돌린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인간이 사는 에네르기가 분출했습니다. 르네상스의 사람은 자주 이렇게 외쳤습니다. “인간은 의욕만 있으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이처럼 힘찬 챌린지(도전) 정신의 토양에서 현실의 삶을 구가하는 문화가 꽃폈습니다. 그러면서 네오나르드 다빈치나 미켈란제로와 같은 예술의 거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콜럼버스에 의한 신대륙, 바스코마가다에 의한 신 항로의 발견도 잇달았습니다.

 

(3) 전란, 질병이 계속되는 악세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전란이 끊이지 않았고, 동쪽으로부터는 이교도 터키 군의 공격에 두려워하는 불안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흑사병이 몇 번이나 유럽을 엄습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최악의 시대였습니다.

 

거기에 르네상스의 꽃은 피었습니다. 사람의 혼이 자유로운 곳에 르네상스는 맥동했습니다. 고난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반복되는 속에서 정신은 단련되고 예술이, 문화가 높아졌습니다.

 

● 맺음 말

 

문 후보자는 신()이라는 신앙의 쇠사슬에 묶인 체 언론에 보도된 것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말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저러다 중풍이라도 걸리면 어쩔까 걱정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모순인지, 스스로 인정해야 끝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시대입니다.

 

()이나 왕이 주인이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속일 순 없습니다.

언론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식민지배,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 “윤치호는 몇 년간 친일은 했어도 기독교인이니 좋은 사람”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등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고, 도리를 근본으로 진상규명하여 분명히 밝히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주장입니다.

얼마나 명쾌한 주장입니까?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불행에 빠지는 근본 원인은 사종교의 신앙에 있다고 꿰뚫어 보셨습니다. 불법이라고 함은 도리(道理)이며”(어서 116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창근과 유병언 문제의 공통점은 둘 다 성직자이면서 종교를 먹이로 인간을 속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는 진상규명 하여 도리에 준해 해결해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