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정종 말고 다른 종파에서는 성불 못하나요?
일월청정: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님의 생명의 당체이신 본문계단의 대어본존님이 계시는 일련정종을 부정하는 단체는 절대로 성불은 없습니다. 이유는 불의(佛意)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부처님의 금언대로 즉 여설수행을 해야지 인사(人師)의 말에 따르면 성불은 영원히 없으며 세세생생 무간지옥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법의 정사(正邪)가 먼저이고 수행은 다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상법시대의 정사(正師)이신 천태대사께서도 법의 정사를 모르고 수행을 하는 것은 상류의 수원지 물에 독극물을 하류의 사람들이 모르고 마시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무식이: 대석사의 본존님이 불타 없어지면 불법이 없겠네요. 인사(人師)가 누구인가요? 대석사 본존님만 불법의 뜻인가요? 본불님의 친필본존님은 여러 체인 걸로 아는데요. 종문에서 부처에게 가까이 가는 게 성불은 중에게 가까이 가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러므로 종문은 정이 아니고 사라고 판단되는데요.
길손: 이런 사람들과 법을 논하고 있다는 게 창피하네요. 아니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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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성불’ 다시말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나’입니다.
위의 글을 보면 성불의 조건으로,
○ 본문의 계단인 대어본존,
○ 불의(佛意),
○ 승려에게 가까이 가는 것, 세가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문장 중에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일련정종을 부정하는 단체는 절대로 성불은 없습니다.”라는 글을 “니치렌 불법을 부정하는 단체는 절대로 성불할 수 없습니다.”로 바꿔야 합니다.
일련정종의 법주였던 ‘닛켄’은 천만이 넘는 학회 회원을 파문한 희대의 방법자입니다. 닛켄의 방법으로 일련정종은 안타깝게도 닛켄종이라는 사교의 집단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사교의 집단인 일련정종은 성불을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먼저 부처가 되는 방법에 대해 경문을 근거로 대화하고 싶습니다.
● 수지즉관심(수지즉성불)은 성불관의 혁명
법화경 방편품의 문입니다.
“불증친근 백천만억 무수제불 진행제불 무량도법”
“佛曾親近 百千萬億 無數諸佛 盡行諸佛 無量道法”
부처는 이전에 백천만억 무수의 제불에 친근하여 남김없이 무량의 도법을 행하고.
이 경문에서는 과거에 부처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오랫동안 생사를 되풀이하여, 무수한 부처를 섬기고 수행한 것을 불인(佛因)으로 해서 그 결과로 구극의 불과(佛果)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수행을 '역겁수행(歷劫修行: 무량겁에 걸친 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적문(迹門: 법화경 전반부. ‘적’은 그림자라는 뜻으로 본체에 반대되는 개념)의 얕은 불인(佛因)·불과(佛果)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문저(文底)의 차원에서 읽을 때, 남묘호렌게쿄라는 부처〈본존님〉는 백천만억의 부처들을 출생시킨 근원의 법이므로, 우리 쪽에서 말하자면 아무런 난행(難行), 고행(苦行)도 없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백천만억의 제불에게 친근한 이상의 공덕이 있다. 또 그것이 남김없이 제불의 무량의 도법을 행한 것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석존을 비롯한 삼세시방의 모든 부처가 성불을 목표로 수행한 ‘인행(因行)’도, 그 ‘과덕(果德)’도 모두 남묘호렌게쿄 속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묘법의 오자를 수지하는 속에 자연히 석존과 모든 부처의 인과의 공덕이 전부 갖추어져 성불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 수지가 즉 관심〈성불〉이 된다)’ 또 ‘즉신성불(卽身成佛: 그 몸 그대로 부처가 된다)’이라고 말합니다. 대성인도 이 묘법을 수지 한 사람은
“석존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어서 1443쪽)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유(本有)의 십계호구(十界互具)”(어서 421쪽)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수지즉관심은 성불관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 저쪽에 있는 ‘성불’이라는 정상을 목표로 한결같이 산길을 계속 올라가는 것이 보통의 성불관이라면, 대성인의 불법은 만인을 빠른 시간에 정상에 오르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 불법은 경애혁명
주위의 산들을 멀리서 내려다 보고 360도 열린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관망하는 듯한 경애. 이 넓디 넓은 부처의 경애로 ‘지금’ ‘이 자리에서’ 즉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실 속에 뛰어들어 이 경애에 선 기쁨을 끝까지 말합니다. 이 실천이야말로 절복이며 대성인 불법의 제호미입니다.
유명한 아부쓰보 어서에는 “귀천상하에 괸계없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대로 그 몸이 보탑이고 또 다보여래다”(어서 1304쪽)라고 있습니다.
지금 브라질에서는 세계인의 축제인 ‘2014년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불법과 축구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 하는 사람들이나, 지금 브라질 월드컵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이나 똑 같은 축구 인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축구로 단련됐느냐’입니다.
부처도 귀천상하에 관계없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대로 부처입니다. 수많은 부처들 중에 다른 점이 있다면 ‘얼마나 신심으로 단련됐느냐’일 것입니다.
경애혁명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사법의 승과 권력자가 결탁하여 목숨에 미치는 탄압을 가해왔을 때 ‘사자왕의 마음’으로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한 사람이야말로 부처가 될 수 있다”(어서 957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법의 승이란 신(神)을 포함한 사종사의를 말합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사자왕의 마음’으로 방법자와 끝까지 투쟁하는 속에 단련이 있고 연마가 있습니다. 즉 절복(折伏) 투쟁입니다. 그 속에 경애혁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 일체를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이르는 수행이며 단련이라고 받아들여
법화경 방편품의 문입니다.
“성취심심 미증유법 수의소설 의취난해”
“成就甚深 未曾有法 隨宜所說 意趣難解” 심심(甚深) 미증유의 법을 성취해서 의당(宜當)함에 따라 설하신 바의 의취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경문에서는 부처의 ‘지혜의 문(門)’이 난해난입(難解難入)인 이유를 말하는 구절입니다.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은 구계의 중생의 여러 기근에 맞춰 설해졌지만 그 ‘의취’, 즉 부처의 ‘진의(眞意)’는 아직 설해지지 않았으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부처가 고행 끝에 얻은 ‘심심미증유의 법’을 곧바로 설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부처와 중생의 차원이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법을 가르쳐도 어중간하게 이해하거나 의심을 일으켜 오히려 정법을 어기고 삼악도(三惡道)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석존은 사람들이 올바르게 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연구하여 각각의 기근에 맞춰 개개인에게 적합한 가르침을 설했습니다. 이것으로 부처의 ‘지혜의 문’까지 도달하게 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전권교(爾前權敎)의 방편(方便)입니다.
부처의 진의는 어디까지나 일체중생이 부처가 되는 길을 설하고자 한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문이나 벽지불 등은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방편으로 설한 임시의 가르침에 집착하여 부처의 진의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의취는 이해하기 어렵도다”의 의미입니다.
닛켄종의 승려들은 니치렌 불법을 신앙한다면서, 방편의 가르침에 집착하여 부처를 신비한 존재로 장식해 돈벌이의 도구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취는 이해하기 어렵도다”의 경문에 해당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위 경문에 대해 “부처는 앞을 내다보고 계시고, 우리는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어 지나간 과거만 보고 있으므로 본존님의 마음을 깨닫기 어려운 법이다.
다만 어떤 일이 있어도 똑바로 본존님을 믿으면 된다. 그러면 반드시 공덕이 나온다. 도중에 의심하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신심의 근본 뜻이 있습니다. 본존님에 대한 ‘확신’이 최고의 ‘지혜’에 통한다.―
이것이 '이신대혜(以信代慧)'입니다. 일체중생이 부처가 되도록 하는 것이 대성인의 ‘의취’입니다. 따라서 대성인의 불법을 끝까지 수지 한 사람은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 도상에 자신의 숙업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나타나지만 절대 분동하면 안 됩니다. 결국 반드시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이르는 수행이며 단련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하면 후에 현상 하나하나의 깊은 ‘의취’를, ‘진의’를 알게 됩니다.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어서 234쪽)는 성훈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대성인의 ‘의취’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종문 주장인, 본문의 계단인 대어본존, 불의(佛意). 승려에게 가까이 가는 것
본인묘초에는 “이 혈맥 및 본존의 대사는 니치렌 적적(嫡嫡) 좌주전법(座主傳法)의 서(書)·탑중상승(塔中相承)의 품승유수일인(稟承唯授一人)의 혈맥이니라, 단단히 명심하여 비장하고 비장할지어다”(어서 877쪽)라고 있습니다.
적적(嫡嫡)이란 가계(家系)를 적자(嫡子)에서 적자로 이어가는 것, 좌주(座主)는 큰 사찰의 주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일련정종의 법주였던 닛켄은, 학회파문이라는 대 방법을 저지르고, 닛켄종이라는 사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대성인께서는 “가책(呵責)하고 구견(狸遣)하고 거처(擧處)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불법(佛法) 중의 원적(怨敵)이니라”(어서 26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문에 의하면 종문의 승려나 신도는 당연히 닛켄의 방법을 가책해야 합니다.
그런데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불의(佛意)에 어긋난 여동죄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계단인 대어본존님에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성인께서는 미래에 방법자의 출현을 예지하셨는지 친필 본존님도 여러 체 남기셨고, 전대의 예하님께서 서사하신 본존님도 많습니다.
창가학회는 도치기 현 조엔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니치칸 상인이 서사하신 어본존을 신심의 혈맥을 이어받은 유일한 화합승단의 자격으로 전 세계 회원에게 수여하고 있습니다.
또 ‘승려에 가까이 하는 것이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주장’은 악승일 경우 신도를 기만하게 됩니다. 사제불이입니다. 어서와 가까이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맺음 말
대성인께서는 “日蓮이 불법(佛法)을 시험하건대, 도리(道理)와 증문(證文)보다 더한 것은 없고, 또 도리 증문보다도 현증(現證) 이상은 없느니라”(어서 1468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 192개국의 광선유포의 전진은 불법사상 미문의 위업입니다.
이 현증이야말로 SGI가 니치렌불법의 불의를 그대로 실천해 가는 화합승임을 증명해 주는 실증입니다.
<참고문헌>
법화경의 지혜, 어서의 세계, 이케다 SGI회장의 방편품 수량품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