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C작전과 학회파문 /<125>입정·수량품 문상 문저의 법문

(125) 법화경 수량품, 문상과 문저의 법문

myungho 2014. 7. 16. 17:00

법화경 수량품, 문상과 문저의 법문

  

 

    

 

입정안국/

석존과 연이 있는 제자들은 오백진점겁 이래 석존으로부터 하종 받은 후 숙익 되여 인도에 태어나 석존께서 법화경을 설하셔서 불도에 들어간 것입니다.

즉 석존의 제자들도 기근이 무르익어 법화경에서 성불(생명에 본래 내재한 불성을 최초로 열음)한 후 부처의 길로 들어간 것입니다. 육도윤회는 불도가 아닙니다.

 

본래 수행도 없는 우리들은 뭔 어마어마한 복이 있는지 말법에 대어본존님과 조우한 것입니다. 아무런 수행도 행공도 없이 이 일생에 여설수행을 하면 불성을 열어 바로 무상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길에 들어가면 석존의 본인 본과 인행과덕을 그대로 물려 받는 것입니다. 불도에 들어간후 무수겁후에 화광여래 천왕여래 등등 기별을 받는데, 저의 얕은 생각으로는 여래라는 호칭이 부처의 다른 이름이라는데 이것이 굳이 비유하자면 불성을 열어 불도에 들어가서 무수겁을 경과한 부처의 호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석존도 오백진점겁 당초에 보살도를 수행하여 불성을 연후 오백진점겁을 경과한 부처님,

우리들은 오백진점겁보다 헤아릴수 없는 과거 즉 무시이래 부터 현재까지 육도윤회한 범부가 일생에 여설수행하여 대어본존님과 경지명합 하면 불성을 열어서 불도에 들어가 무수겁이 경과하면 ㅇㅇ 여래가 되겠지요. 

 

 

위의 문은 수량품에 대한 법문은 문상의 법문입니다. 그리고 어서근본으로 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귀하의 사색을 돕기 위해

수량품의 문상과 문저로 같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대성인은 일체경 중에 수량품이 계시지 않는다면 하늘에 일월(日月) 없고 나라에 대왕이 없고 산해(山海) 옥이 없으며 사람에게 혼이 없는 것과 같다.”(어서 1211)

수량품이 없으면 모든 경전은 뿌리 없는 ’ ‘수원(水源) 없는 강하(江河)’(어서 12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량품은 모든 경전, 넓게 말하면 모든 사상, 철학, 종교의뿌리 되는 생명의 문제에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수량품에서는 무엇을 설했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여래수량품에서는 영원한 생명 설했습니다. 수량(壽量)수명을 헤아린다.’ 뜻입니다. 부처의 수명은 무량하다고 밝힌 경전이 수량품입니다.

 

중요한 점은 석존이 자신의 생명을 근본으로 영원한 생명을 설했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추상론도 가공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석존 자신이 겪은체험담입니다.

체험담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은 (석존) 젊은 나이에 출가해서 수행하여 가야성 근처의 보리수 밑에서

성불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실은 나는 오백진점겁이라는 상상도 없는 오랜 옛날에 이미 성불해 있었다.

이래 사바세계나 다른 무량한 국토에서 무수한 중생을 교화해 왔다. 이처럼 수명은 무량하고 상주(常住)이며 불멸이다.”

 

석존은 오랜 구원에 성불했습니다. 이것을 구원실성(久遠實成)이라고 합니다. 반면 석존이 금세에 비로소 성불했다고 하는 것을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석존은 입멸하지 않았는가, 부처의 수명도 역시 유한하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의문은 수량품에서 해답을 찾을 있습니다.

 

금세에 비로소 성불하여 입멸하는 시성정각의 석존은 방편(方便) 부처이며, 상주불멸, 구원실성의 석존이 바로 진실한 부처라고 수량품에서는 설합니다.

 

방편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부처의 생명은 진실하게 말하면 영원하지만, 부처는 중생의 구도심을 높이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유한한 모습을 나타내어 입멸한 것입니다. 이것이 수량품의 해답입니다.

 

● 영원한 생명의 장대한 서사시

 

영원한 생명이라고 해도 부처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 범부와 아무런 관계도 없지 않은가.”라는 의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구원실성의 석존은 궁극적으로 말하면 사실은 우리 자신, 중생 자신을 말합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여래수량품의) 여래(如來) 일체중생이요.”(어서 75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부처뿐 아니라 일체중생 생명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석존은 스스로 깨달은 영원한 생명을 밝히려고 구원실성의 부처로서 본지(本地: 진실한 경지) 나타냈습니다.

 

구원실성의 부처는영원히 민중을 계속 인도하는 부처입니다. 성불한 결과인 부처의 모습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설하는 것이 문상(文上) 법문입니다.

 

● 수량 문저(文底) 의 법문

 

그러나 부처의 모습도 궁극적으로 말하면 우주 근원의 묘법 작용입니다.

 

삼세 영원한 묘법이 사람의 생명에 연화처럼 피어 고뇌의 현실에서 청정하고 지혜롭게 빛나는 것이 부처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묘법의 활동은 영원합니다. 묘호렌게쿄가 바로 구원실성의 부처의 실체이며 석존을 비롯한 모든 부처는 묘법의 작용입니다.

 

이렇게 인식하는 것이 수량 문저(文底) 법문입니다.

따라서 대성인은 묘호렌게쿄야말로 본불(本佛)”(어서 135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저의 차원에서 여래수량품의 여래는 남묘호렌게쿄 여래, 대성인 자신이라고 단언하십니다.

 

대성인은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자는 수량품의 본주(本主)이니라.”(어서 753) 말씀하셨습니다. 수량품의 주체자는 남묘호렌게쿄를 수지하는 우리라고 어본불이 확실히 단언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장대한 서사시인 수량품, 여러분이 바로 주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