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풍의 95년, 41- 133/<131>교황의 방한과 입정안국

(131) 교황의 방한과 입정안국

myungho 2014. 8. 30. 06:16

교황의 방한과 입정안국

 

 

August 16. 2014 COVERTRY CALIFORNIA

 

 

役人 14.08.26. 22:12

교황방한이 남기는 한국이라는 국토세간의 괴리감이 있는 건 맞습니다.

교황도 스스로가 정한 인생길을 갈 뿐입니다. 나름 12천만 명의 신도를 거느린 종교지도자 맞습니다. 교황의 행위를 흑백논리처럼 극단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명자체가 십계라는 흐름이 있고 문제는 자기라는 생명의 기저부는 타종교인도 체험하는 게 아닌지요.

광선유포라는 잣대를 타종교와 어떻게 소통하고 포용해 나가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물론 내외상대에서 걸러지는 사상입니다만

스승께서 대화하시는 대부분의 지도자, 석학들도 종교는 달랐습니다.

제자로서 가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요? 타종교인과 소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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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 14.08.27. 10:57

선생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혼란스럽습니다.

차 선배님께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불법은 사람의 귀천에는 의하지 말 것이며 경문을 우선으로 할 것

 

부족하지만 같이 공부해 보겠습니다.

대성인께서는 불법(佛法)은 결코 사람의 귀천(貴賤)에는 의하지 말 것이며 오직 경문(經文)을 우선으로 할지어다”(어서 48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나라의 원수나 법주나 교황 보다 경문을 우선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부처가 되는 길은 선지식보다 더함은 없느니라, 나의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다만 뜨겁고 찬 것을 알만한 지혜라도 있다면 선지식이 소중하니라(어서 574) 선지식은 어서입니다. 어서를 문증으로 대화해 가겠습니다.

 

● 먼저 대성인의 입신동기부터 공부하겠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입신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아큐님도 입신동기가 병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저의 입신동기도 간경화라는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성인께서는 저희와는 달리 민중구제의 마음이셨습니다.

 

대성인께서는 1222 2 16일 아와 지방 나가사 군 도조 마을의 어촌에서 태어나 12살 때 아와 지방의 세이초 사(淸澄寺)에 들어가 당시의 초등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대성인은 그 때, 세이초 사의 본존인 허공장 보살을 보며 일본 제일의 지자(知者)가 되게 하소서”(어서 888)라는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이와 같은 서원을 세운 것은, 당시 대성인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러 어서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1) 승구의 난(1221)때 조정 측이 천태 진언의 비법으로써 승리를 기원하였는데도 왜 참패했을까.

(2) 불교는 석존 일불(一佛)이 설한 가르침인데 왜 각 종파로 나뉘어 다투는 것인가.

(3) 불법은 민중을 구하고 사회의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있는 것일진대 왜 현실에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민중과 사회를 구하는 지자(知者)가 되고 싶다는 것이 어린 대성인의 바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불법을 구명하기 위해서 출가하기로 결심하십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세계적인 천재지변의 원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대성인은 각지의 여러 큰 사원을 돌면서 유학

 

대성인께서는 가마쿠라, 교토, 나라 등 각지의 여러 큰 사원을 돌면서 유학을 시작하여 일체 경을 정독(精讀)함과 동시에 소승, 대승 각 종파의 교의의 본질을 검증하셨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일체 경을 보았더니 팔종(八宗) 및 일체경의 승렬(勝劣)을 거의 알게 되었으며”(어서 89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로서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법화경이야말로 석존이 설한 일체 경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경전이다.

(2) 내가 깨달은 묘법은 법화경 간요의 법인 남묘호렌게쿄이다. 석존 멸후에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법으로 남묘호렌게쿄를 넓혀야 한다.

 

(3) 간요의 묘법을 깨달은 나는 법화경에서 말법의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명을 부처에게 의탁 받은 지용(地湧)의 보살에 해당한다. 특히 그 상수(上首)인 상행보살(上行菩薩)로 다시 태어나, 묘법을 말법(末法)에 넓혀야 할 법으로서 나타내 가야 할 사명이 있다.

 

(4) 지금의 일본에 넓혀진 여러 종파의 교의에는 법화경에 위배하는 ‘방법(謗法)’의 요소가 있다. 이 여러 종파의 방법을 책하면 대난(大難)이 닥쳐 오는 것은 필연이다.

 

●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을 밝히시다.

 

대성인이 가마쿠라에서 홍교를 시작하셨을 당시 매년 기상 이변과 대지진 등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잇따랐고 대기근, 대화재, 역병 등도 계속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1257 8월에 가마쿠라 지방을 덮친 대지진은 가마쿠라에 있는 중요한 건물을 모조리 무너뜨리는 대피해를 초래하였으며 사람들을 고뇌의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대성인은 이 지진을 계기로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을 밝히시고,

그것을 근절하는 방법으로 <입정안국론>을 쓰시어 1260 7 16,

당시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던 호조도키요리에게 제출하셨습니다. 이것이 제1회 국주 간효(國主諫曉)입니다.

 

<입정안국론>에서는 먼저

(1) 천재지변이 계속되는 원인은 온 나라 사람들이 정법에 등을 돌리고 사법(邪法) 믿기 때문이며,

(2) 그 원흉은 호넨(法然)이 설하기 시작한 염불에 있다고 지적하시고,

(3) 그 일흉을 단절하고 정법을 신수(信受)한다면 평화 낙토가 현실로 나타나지만

(4) 그렇지 않는다면 경문에 나타나 있는 재난 중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자계반역난(내란)과 타국침핍난의 두 가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며

속히 정법에 귀의하라고 간효하셨습니다.

 

약사경에는정법(正法)을 비방(誹謗)함으로써 일어나는 이곱 가지의 나쁜 현상으로

(1) 인중질역난(人衆疾疫難) 전염병 등으로 사람이 많이 죽음

(2) 타국침핍난(他國侵逼難)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당함

(3) 자계반역난(自界叛逆難) 내부 항쟁, 즉 같은 패끼리의 싸움

(4) 성수변괴난(星宿變怪難) 혜성 출현 등 천체 운행의 이변

(5) 일월박식난(日月薄蝕難) 일식 월식 등

(6) 비시풍우난(非時風雨難) 때 아닌 폭풍우 등

(7) 과시불우난(過時不雨難) 우기에도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 등의 칠난(七難)을 들고 있습니다

 

 

 

이를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이나 소용돌이 치는 전쟁도, 근본 원인은 인류가 정법을 믿지 않고 사법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입정안국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유난(留難)을 멈추게 하는 비술(秘術)은 오직 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어서 1170) 세월호나 집행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타협이나 책략이 아닌 광선유포뿐이다, 엉뚱한 데서 답을 찾지 말고 경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대성인의 지남이십니다. 

 

호넨은 지금의 누구에 해당할까요? 당연히 외도의 교황을 포함한 사종의 우두머리입니다. 만약 그 일흉을 단절하지 않고 정법을 신수하지 않는다면 자계반역인 내란과 타국침핍의 난이 일어난다는 것을 경문에 의거 말씀하고 게십니다.

 

행학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어서 1361)

어느 종교는 친절만을 강조하며, 구도는 성직자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니치렌 불법은 모든 사람이 신행학의 역동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수행 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아만편집으로 빠기게 됩니다.

 

● 절복은 수라도인가 보살도인가?  

 

만인의 성불을 믿는 모습에 자비가 있습니다. 이 믿음을 수반하는 자비를 대표하는 수행이 절복입니다. 다시 말해 절복은 성불에 이르는 데 없으면 안 될 실천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역인님도 절복에 대해 물론 내외상대에서 걸러지는 사상입니다만 스승께서 대화하시는 대부분의 지도자, 석학들도 종교는 달랐습니다. 제자로서 가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요? 타종교인과 소통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절복이 다투는 마음인지, 투쟁하는 마음인지?’ ‘수라도 인지 보살도 인지?’라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개목초>에서 대성인이 당시 염불종이나 선종의 교의는 사람들에게 법화경을 버리게 하는 악연이 되는 방법의 가르침이며 무간지옥의 인이 된다고 파절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대성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투는 마음’ 또는 수라도’라는 등의 비난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타종을 책하는 것은 불교답지 않다. 타종을 비판하는 것은 조화의 정신에 위배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개목초 하, 154)

 

<개목초>에서 대성인은 타종에서 비난할 뿐 아니라 문하 중에서도 대성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있었음을 밝히셨습니다.

당신의 불심(不審) 세간의 학자는 다분히 도리라 생각함이라. 아무리 간효해도 니치렌의 제자들조차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고”(어서 235)

 

<사도어서>에서 세간의 학자들과 동조하여 대성인을 위배한 문하들에 대해 의심을 일으켜 법화경을 버릴 뿐만 아니라, 도리어 니치렌을 교훈하고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벽인(僻人)”(어서 960)이라고 통렬히 파절하십니다.  

 

불법의 목적은 어떤 폭풍우도 극복하는 강인한 생명을 획득하는 것

 

여기에 잠재한 본질적인 문제는

불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뿌리 깊이 깔려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라고 하면, 열반(涅槃)이라는 정적(靜寂: 고요하고 평온함)의 경애를 획득하는 데 있다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마을에서 떨어진 산에 들어가 현실 세계에서 도피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구태여 말하면 현실의 괴로운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향을 구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한 부처의 진실한 정신 투쟁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참된 불교는, 가공의 천지에서 이상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의 괴로움이 소용돌이치는 사바세계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현실 변혁 사상입니다. 불법의 목적은 현실과 투쟁하면서 어떤 폭풍우도 극복하는 강인한 생명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불법의 가르침에서 진수는 물결 하나 일지 않는 작은 연못과 같은 평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도가 소용돌이치는 대해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행복 경애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풍파가 일지 않는 작은 행복을 원할지라도 폭풍이 불면 파도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오리려 무명과 숙명의 폭풍우 속을 의연하게 전진하는 근본적인 힘을 발휘해야 비로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투쟁해야만 행복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절복에는 다투는 마음이 있으므로 수라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 대해, 대성인은 절복은 자비이고 악과 투쟁하는 마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부처의 마음이므로 절복은 부처와 불이(不二)의 마음으로 실천하는 수행이며 말법 시대 보살도입니다.

 

● 맺음 말

 

자타가 함께 행복을 구축하려면, 사람들에게 악연이 되는 잘못된 사상, 종교와 투쟁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절복입니다.

 

신심의 눈으로 보면, 외도의 교황도, 파화합승 한 집행부도, 자비의 마음인 부처와 불이(不二)의 마음으로 일어나 절복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방법(謗法)의 자를 향해서는 오로지 법화경(法華經)을 설할지어다, 독고(毒鼓)의 연()으로 하기 위함이니라”(어서 438)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민중구제를 위해 수 많은 나라의 지도자와 석학을 만나 법화경의 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숙명전환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절복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불법의 도리란 인과의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