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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오바/ 유언비어 난무/ 용녀성불과 인과구시

myungho 2014. 11. 8. 05:12

(136) 오바 SGI이사장/

유언비어 난무/ 용녀성불과 인과구시

 

 

 

201310월 한국을 방문한 하세가와 SGI부회장은 회원들에게

나는 한국이 하나로 되는데 이런 활동을 했다고 선생님께 보고할 수 있는 신심을이라는 희망의 목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인 금년 10, 오바 SGI이사장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개혁연대 멤버들은 인권이 유린당한 체, 20년의 세월입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네요.

현재 조직이 4조각으로 분열된 상태이기 때문에, 회원들의 촉각은, 오바SGI이사장 방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속 시원한 답변보다는 궁금증과 유언비어만 난무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의연대 오바 이사장이라는 명분에 굴복 집행부 회합에 6명이 참석

대구 집행부에서 교재 지와 신문 무료 공급해준다는 제안에 희희낙락

대구는 왜 투쟁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험난한 파도를 넘은 건지 해명 해야

대구도 일부 간부들의 사리사욕 채우기 위한 행진을 해 온 건가?”

최근에 신한위 핵심간부 이탈해 조직국장과 만남을 하고……

전이사장관련 루머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 현실등입니다.

 

무슨 비밀이 그리 많은 지, ‘철의 장막이란 집행부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요?

이렇게 회원들을 기만하는 암흑 속의 정치라면 SGI간부는 한국에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본래 종교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행부와 개혁연대는,

모든 회원들이 알 수 있게 화광신문과 창가타임스를 통해,

오바SGI이사장의 방안 목적인 분열된 조직의 화합에 대해 공개해야 합니다.

 

 

이제는 집행부도 권위를 내려놔야

 

 민중을 억압하고, 권위로 무조건적인 종속을 강제하는 종교나 종교자는 이미 시대착오의 유물로서 자멸해 갈 것이다. 하물며 대성인 문하라고 자칭하면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대성인의 자비와 평등의 정신에 반역하는 대죄이다”(美日 교류 연수회)

 

지금 세계적인 조류가 된 민주의 시대, 민중의 시대입니다. 이 인류사적 전환을 혼란과 반동으로 역류시켜 불행한 결과로 끝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대가 불법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세계광포의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집행부도 권위를 내려놔야 합니다.   

 

지난번 “(135)오바SGI이사장/ 개혁의 원점은 스승으로부터 의탁 받은 진상규명에서 '인간혁명'에 나오는 아래 내용을 말씀 드렸습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무엇으로 이깁니까?

단결입니다. 동지의 단결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신심의 단결이 아니면 안 됩니다.

신심의 원점을 잃고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신심의 원점에 대해 법화경에 설해진 지적보살과 사리불, 그리고 용녀성불의 체험담을 통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 지적보살과 문수사리보살의 대화

 

법화경에서 다보여래를 따라 온 지적보살(知積菩薩)은 석존이 제바달다의 수기를 마치자 본토(보정세계)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지적(知積)은 지혜가 쌓여있다는 이름처럼 머리가 좋아 이해가 빨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악인성불을 듣고, 이제 석존의 입멸 후 법화경을 홍통하라는 영법구주의 권유는 끝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지레짐작이지요,

그러나 석존의 설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요. 머리가 좋은 지적도 알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귀하가 질문한 즉신성불(卽身成佛)입니다.

 

석존은 돌아가려는 지적을 만류하며 문수사리보살과 묘법에 대해 대화를 하고 돌아가면 어떨까라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대해(大海)의 용궁에서 홍교하던 문수사리보살, 자신이 교화한 많은 보살들을 이끌고 허공회에 출현합니다.

 

거기서 지적과 문수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먼저 지적이 문수에게 당신은 용궁에서 어느 정도의 중생을 교화해 왔는가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 문수는 용궁에서 오로지 법화경을 설하여 무량의 중생을 화도해 왔다고 하며, 용왕의 딸인 8세의 용녀가 법화경을 듣고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적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부처의 깨달음은 보살이 무량겁 동안 난행고행을 거듭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용녀가 짧은 시간에 성불했다는 일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적은 법화경의 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용녀(龍女)가 즉신성불(卽身成佛)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묘법에 대한 불신(不信)근본의 무명”(어서 746)입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의 생명을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결국 자기자신에 대한 불신이 됩니다.

 

만약, 부인이 남편을 믿지 못한다면 하루하루가 불안과 지옥의 연속일 것입니다. 만약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고 돈이나 권력에 의존한다면 그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권력에 의존하는 집행부의 생명상태는 남편을 믿지 못하는 부인과 같을 것입니다.  

 

인과이시(因果異時)와 인과구시(因果具時)

 

인과이시와 구시를 알려면 별교와 원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별교(別敎)는 별해서 보살에게만 설한 교법을 말하고, 원교(圓敎)는 부처의 깨달음을 그대로 설해 나타낸 원융원만한 교법을 말합니다.

 

대성인께서는 지적의 불신(不信)별교(別敎)의 의()이며”(어서 746)라고 말씀하셨듯이, 지적은 보살의 52위 등 많은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성불할 수 없다는 생각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도수행과 성불의 결과가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따로따로 되어 있다는 것이 인과이시(因果異時)입니다. 

 

이에 대해 용녀는 법화경이라는 원교(圓敎)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모든 사람의 생명에는 십계의 모든 생명 경애가 구비되어 있어서 지금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성불의 경애를 나타낼 수 있다고 설합니다. 그러므로 인과구시(因果具時)입니다. 

 

() 사상(思想)에 머물러 있는 지적보살에 대해, () 사상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용녀입니다. 심원한 내용을 극적인 스토리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법화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법화경 적문(迹門)에서는 이승계(二乘界)의 성불이 허락되고, 이로써 모든 중생에게 십계의 생명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러나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 하여 석존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 수행을 거듭하고 나서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성불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심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석존조차 아득히 먼 시간 동안 수행을 거듭하여 부처가 되었다니, 중생에게 아무리 불계가 갖추어졌다 해도 성불은 무리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화경 본문(本門) 수량품에 와서는 설법이 달라집니다. 석존은 여기서 구원의 옛날부터 부처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힙니다.

사실 석존은 본디 부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굳이 보살이나 범부의 모습으로 행동하며 사람들을 구해왔다고 설합니다.

 

● 인과구시는 구계→불계불계→구계의 과정을 모두 나타냄

 

법화경 적문은 구계의 중생이 수행을 거쳐 불계에 이르는 인과를 설했습니다. 그에 대해 법화경 본문은 본디 불계의 중생이 사람들을 구하는 구계의 수행을 한다고 설합니다.

 

 

인과구시(因果具時)수행을 거쳐 성불로 가는 구계→불계의 과정뿐 아니라, 성불을 거쳐 현실 세계의 행동으로 가는불계→구계라는 과정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는 범부의 실천이 사실은 부처의 행동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을 구하는 범부의 실천이 사실은 부처의 행동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일념의 생명에 불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자(富者)나 건강이 회복됐다는 등의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지금 하고 있는 수행이 옳은 수행인지 어떤지 의문을 품게 되거나,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구하려는 불법의 실천그 자체가 이미 인생승리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을 구하려는 불법의 실천은 법화경에 설해진 용녀성불 그대로입니다.  

용녀는 지적의 불신(不信)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장소에 나타나 석존에게 인사하며 다음과 같이 맹세합니다. 부처만이 저의 성불을 알아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대승의 가르침(법화경)을 열어 고뇌의 중생을 구해 가겠습니다”(법화경 431)

 

여러분은 나를 깔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다. 진실은 부처가 알아주고 있다. 나는 오직 나를 구해 준 묘법의 힘으로 사람들을 구해 갈 뿐이다

대단한 확신입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성불의 모습입니다.

 

용녀의 맹세는 악과 투쟁하는 개혁연대의 부인부, 여자부와 이중으로 겹쳐집니다. 아무리 ‘SGI반대파라고 매도 당해도 선생님은 알아주시면 된다는 신념 하나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악과 투쟁한 모습이야말로 여인성불의 모범입니다.  

진상규명을 향한 19년 간의 투쟁은 192개국 SGI회원들의 거울이 될 것입니다.

 

● 고뇌의 중생을 구제해 가는 석존의 실천 속에 성불의 인도 과도 포함

 

집행부는 왜 사제의 마음을 볼 수 없을까요?

선생님께서는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을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악을 자각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악에 물들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선인(善人)이란 악과 싸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외부의 악과 싸움으로써 자신의 내면의 악을 정화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궤도가 인간혁명의 궤도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론만으로는 좀처럼 그 집착을 제거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바품의 상징적인 표현은 현증에 의해 여인성불을 가르치려 했다는데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인과구시에 대해 조금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석존은 먼 옛날부터 부처였다석존은 본디 부처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석존은 구원 때에 어떻게 부처가 된 것일까요? 불법은 인과를 설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면 이상합니다.

 

그러나 법화경의 경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그에 대한 대답은 씌어있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대성인은 석존을 비롯한 모든 부처가 부처로 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 남묘호렌게쿄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인과구시(因果具時) 불가사의의 일법(一法)이 있나니 이를 이름하여 묘법연화(妙法蓮華)라고 하였다”(어서 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과구시의 일법이란 바로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근원의 법인 묘호렌게쿄를 말합니다.

 

묘호렌게쿄에는 불도수행으로 쌓은 온갖 성불의 인(), 성불한 공덕의 결과(結果)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화경에 설해진 용녀도 대승의 가르침(법화경)을 열어 고뇌의 중생을 구해 가겠습니다라고 스승에게 맹세했을 때 이미 성불의 인도 과도 갖춰진 것입니다. 

 

석존도 역시, 고뇌의 중생을 구제해 가는 사신홍법의 실천 속에 이미 성불의 인도 과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따로라는 인과이시는 미현진실입니다.

인과구시입니다.

법화경에 석존이 구원 때 어떻게 부처가 된 것인지에 대한 답이 씌어있지 않은 것은 인과구시이기 때문입니다. 

 

● 용녀의 결의를 듣고 이번에는 사리불까지 불신하며 악으로 둔갑

 

우리는 법화경의 인과구시와 용녀성불을 통해 즉신성불에 대해 배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즉신성불이란,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제하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라는 부처의 강한 마음을 나의 몸에 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SGI반대파라는 악구와 차별을 받아도 빙긋 웃으며 유유하게

불행한 사람을 구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그 몸 그대로 부처로 빛나가는 것입니다. 서방정토에 가는 것도, 32 80종호라는 특별한 자신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기쁘면 기쁜 모습 그대로 어본존을 믿고, 광선유포를 위해 행동하면 그 자체가 성불입니다. 용녀성불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형식적으로 적당히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생성불(一生成佛)을 향해 물이 흐르듯이 각자 목표를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유유히 나가지 않으면 타락해 버립니다.

 

어떻든 법화경에서는 용녀의 결의를 듣고 이번에는 사리불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불신을 표명합니다. 첫째는 지적과 같이 부처의 깨달음은 길고 긴 시간의 고행에 의해 얻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입니다. 둘째는 여성은 범천, 제석, 전륜성왕, 부처로는 될 수 없다는 오장(五障)의 설입니다. 이는 임시로 설한 소승교에서 설한 내용입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불교회 3,4,5,6대 이사장들처럼 사리불도 악의 대표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역겁수행의 성불관도 ○오장의 설도 용녀가 즉신성불의 현증을 나타냄으로써 훌륭하게 파절됩니다.

 

이는 개혁연대가 사제불패의 정신으로 끝까지 투쟁한 현증을 나타냄으로써 ○집행부의 부정부패와 ○인권탄압하여 회원들을 퇴출시킨 범죄행위 그리고 ○내정간섭이라는 책략으로 사적대한 악의 정체를 훌륭히 파절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남의 불성불(不成佛)은 나의 불성불, 남의 성불은 나의 성불

 

인과구시(因果具時)에 의한 용녀성불은 법화경에서 용녀가 석존에게 우주의 가치와 동등한 보주(寶珠)를 꺼내 바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주를 석존에게 바친 용녀는, 이를 보고 있던 사리불에게, 자신의 성불은 이 보주를 주고 받는 것보다 빨랐다고 단언합니다. 인과구시입니다.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역겁수행이라는 인과이시의 근원적으로 파절하고 있습니다.

 

보주란 묘법의 상징입니다.

또 묘법의 당체인 자신의 생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보주인 생명을 부처에게 바친다는 것은 귀명(歸命)이고, 나무(南無)이며, 신심(信心)입니다.

 

그리고 부처가 보주를 받았다는 것은, 용녀의 성불을 부처가 증명한 것이 됩니다. 또한 일념삼천의 묘리를 깨닫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용녀가 손에 가질 때는 성득(性得)의 보주이고 부처가 받으실 때는 수득(修得)의 보주이니라”(어서 747) 성득의 보주란 용녀가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이며, 수득의 보주란 수행에 의해 불성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성득의 보주를 갖고 있습니다. 용녀는 축신(畜身)이나 축생계에도 당연히 불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차별관에 사로 잡힌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승작불에서 보살들이 이승은 성불할 수 없지만 자신들은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념삼천을 알고 보니 이승이 성불할 수 없다고 하면 자기 생명의 이승계도 성불할 수 없으며, 자신의 성불도 없었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남의 불성불(不成佛)은 나의 불성불, 남의 성불은 나의 성불”(어서 401)이라는 것을 보살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차별(差別)한다는 것자기 자신의 생명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용녀(龍女)는 사리불이나 지적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그대의 신력(神力)으로 나의 성불을 보라”(법화경 433) 대단한 용기와 확신입니다.

 

대성인께서는 이 용녀의 외침에 대해 사리불이 용녀의 성불이라 생각하는 것은 벽사(僻事: 틀린 집착)이니라. 자신의 성불이라 관(: 보아야)하라고 책()하였느니라”(어서 747)라고 말씀하십니다.

 

용녀성불에 대한 설법에서는 사리불과 지적보살이 계속 당하기만 합니다. 집행부의 눈에는 상대의 불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의 불계를 보지 못하면 자신의 불계를 볼 수 없습니다.

 

 지혜제일의 사리불도 용녀의 신심에는 당할 수 없었다는 용녀의 이야기

부정부패로 학회를 이용한 3,4,5,6대 이사장들을 향해 외치는 개혁연대의 부인부 여자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맺음 말

 

법화경의 용녀성불에서 부처의 삶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금 생에 성불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 살기 위한 중요한 근본 방정식을 가르치고 배운다. 인류의 발전을 위한 법칙을 계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제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용녀성불의 진수는 무엇일까요?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은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라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돈을 위해서도 영예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민중을 위해 진실을 주장하고, 사악을 파절하며, 정의의 투쟁을 끈질긴 인내로 관철하는 혼입니다. 그것이 학회정신입니다”(사제의 보관, , 17) 이것이 신심의 원점입니다.  

 

성불을 마치 신비적으로 생각하여, 지적보살이나 사리불처럼 오장설의 차별의식을 갖고 상대를 깔보며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조직을 분열시킨 집행부의 악을 외면한 체, 보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