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정의777님에게,
C작전 종문 아닌 학회가 계획?
정의/ C작전은 놀랍게도 종문이 아닌 학회가 계획했던 것! 창가학회 파문을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이가 있다면 이케다 다이사쿠라는 것, 그 자신 그것을 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종문과의 결별을 막후에서 계획하고 진행하였다는 것, <자유계시판 3446> “차명호님의 글을 읽고나서- 창가학회의 므로는 진실 하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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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너무나 당연한 대한민국의 국토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합니다. 아귀도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종문에서는 C작전을 놀랍게도 자신들이 아닌 학회가 계획했다고 뒤집어 씌웁니다. 돈(공양금)만 아는 아귀계에서 보면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습니다. 어떤 경애에서 보느냐에 따라 대상이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것은 귀하의 자유입니다.
여기는 신심의 단체입니다. 신심의 측면에서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언론전에서 어서 한마디도 없이 돈만 말씀하십니다. 돈만 아는 생명을 3악도 4악취라고 합니다.
여기는 공개토론장입니다. 종문을 대표하여 말씀하신다면 종문의 체면도 생각해야 합니다.
● SGI는 니치렌 대성인의 올바른 가르침을 수호하는 단체입니다. 초창의 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창가학회는 니치렌 대성인을 본보기로 삼아 끊임없이 불법에 대한 오해와 박해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수필 “니치렌 대성인의 대난 (On the Persecutions Befalling Nichiren Daishonin” (see pp. 55–65)에서 이케다 SGI회장은, 최고의 덕을 지향해야 할 정치권력자나 종교지도자가 사악한 마음에 지배당하면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정한 법화경 행자는 박해를 받았을 때 그것을 크게 기뻐하며 법화경의 정수를 유포함으로써 박해를 이겨낸다고 쓰고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형제초에서 “이 법문을 말하면 반드시 마(魔)가 출래(出來)하느니라. 마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正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어서 1087쪽)라고 쓰셨습니다.
● 초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회장은 제자인 도다 조세이와 함께 대화를 기반으로 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사회를 소생시키고자 창가교육학회를 설립하셨습니다.
당시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던 일본의 군국주의 정부는 학회를 국가신도 아래에 편입시키려 했고, 이 정책에 반대하던 마키구치 회장과 도다 회장은 투옥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한 일련정종 승려들은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신도를 찬양하고 심지어 마키구치 회장과 도다 회장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마키구치 회장은 감옥에서 순교하시고, 출옥한 도다 회장이 창가학회의 재건과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세계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서게 됩니다.
● 그러나 도다 회장은 자신과 스승을 배신한 종문의 승려들을 원망하기는커녕, 종문이 대성인 정신에 입각해서 묘법을 유포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도다 회장은 총본산을 재건하고 수많은 지역 사원을 건립해 종문에 공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최후에는 가장 가까운 제자인 ‘이케다 다이사쿠’에게, 수세기 동안 뿌리깊게 남아있는 종문의 오만함과 이기심에 대해서는, ‘추격의 손을 늦추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종문에 둥지를 튼 사악과 끝까지 싸우고, 인간정신의 ‘일흉(一凶)’이 되는 모든 마성에 추격의 손을 늦추지 말라! (신인간혁명 8권, 165쪽)”는 유명(遺命)을 남긴 것이다.
문헌까지 말씀드렸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케다 회장 또한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 1957년 당시 창가학회가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될 단체라 생각한 오사카 정치인들이, 당시 오사카에서 전례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학회의 리더인 이케다 회장에게 선거법 위반이라는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웠던 것입니다. 물론 이케다 회장은 후에 무혐의로 풀려나게 됩니다.
창가학회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함에 따라 학회와 이케다 회장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날조된 스캔들성 보도를 내는 방송매체도 있었습니다. 일본 국회에서 학회를 감시하고자 몇 번이나 이케다 회장에게 청문회에 출석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 1970년대 말에는 일련종의 승려와 창가학회의 고문 변호사였던 마사토모 야마자키가 회원들 사이에서 이케다 회장에 대한 존경심을 무너뜨려 학회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자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케다 회장은 이렇게 부당한 의도로부터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79년 4월 창가학회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용퇴 후에도 SGI의 회장으로서 끊임없이 전세계의 인재를 격려하고 육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 1990년대 후반, 종문은 다시 한 번 이케다 회장과 학회원들을 대상으로 부당한 조치를 취했는데, 그것이 결국 1991년 창가학회와 SGI를 파문한 사건입니다.
67대 법주인 닛켄과 종문의 승려들은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며 폭력, 성추행 등 말도 않되는 혐의를 조작하여 창가학회와 이케다 회장을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혐의들이 경찰과 법원에서 깨끗하게 기각되자, 닛켄 일파는 판결을 담당한 사람들을 부패관리로 몰고가기까지 했습니다. 모함과 헛소문으로 공격하는 것만 봐도 그들이 이미 석존과 니치렌 대성인의 적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 닛켄은 창가학회의 사제불이 정신과 조화로운 단결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학회의 그러한 단결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모든 신자들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숭배하는 절대적 권력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불이는 권위나 직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 말씀하셨듯, 창가학회 3대 회장들은 일체중생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묘법을 유포하고자 하는 사명을 공유하며 깊은 상호 존경과 회원보호에 뿌리를 둔 신심을 근본으로 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닛켄과 종문이 철저히 실패한 부분이다.
● 대성인 재세시에는 대성인을 질투한 고승 료칸이 권력과 자신의 사회적 지위만을 탐닉하며 사회를 불행으로 몰아갔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케다 회장이 대성인의 어유명을 실현시키고자 전혼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승려의 옷을 입고 대성인 불법의 법주라는 직책을 가진 닛켄이 이케다 회장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대성인의 어서를 읽으면 묘법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법화경 행자가 그러한 대난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원리가 오늘날 어떻게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는지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창가학회 회원과 3대 회장은 모든 종류의 난과 맞서 싸워 훌륭하게 승리를 거듭해 가며 더욱 더 강성해 졌습니다. 이러한 신심과 실증의 모델은 법화경에서 예언한 대로이며 니치렌 대성인에 의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 (형제초, 1087쪽) “강적을 굴복시켜야 비로소 역사(力士)임을 안다.(사도어서, 957쪽)”라는 대성인 말씀의 진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SGI야말로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올바른 가르침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악을 철저히 물리치고, 일체중생을 위해 현실 속에서 평화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단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신심의 눈으로 학회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