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정의님의 코멘트에 대한 답변
정의입니다. 컴이 아니라 간단히 여쭤보죠. 귀하의 글에 이케다가 주사친의 삼덕을 갖췄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케다가 1977년에 발표한 불교사관을 말한다의 내용을 전적으로 따른다는 것인가요?
차명호 답- 주사친의 삼덕을 가추셨다는 것은 저의 신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니치렌대성인을 법의 스승으로, 이케다 선생님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귀하도 닛켄을 인생의 스승으로 선택할 때, 무조건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주사친의 삼덕에 대해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정의님은 참 많은 것을 알고 게십니다. 귀하가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36년 전인 1977년의 이야기입니다. 그걸 저에게 질문하시면 당연히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욕보이는 질문입니다. 불법은 “현당이세”입니다. 현실적인 질문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정의의 답
이케다가 주사친의 삼덕을 갖췄다는 것은 님의 신념이 아닙니다. 학회의 교의입니다.
자신을 속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원의 스승이라 하여 자신 이후에는 스승은 없다는
교만은 인간으로서 최대의 교만인 것입니다.
말법이후 진미래제까지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부처님은 니치렌대성인 오직 한분이십니다.
법의 스승과 인생의 스승이 따로 있다니 놀랍습니다.
저는 법과 인생 모두의 스승으로 니치렌 대성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닛켄법주를 비롯하여 현재의 니치뇨상인예하님을 스승으로 하는 것은,
님들처럼 그 분(이케다)이 훌륭하니 그 분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내증으로서의 대성인님이라 삼가 예를 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법이 훌륭하기 때문에 그 법을 전지하시는 예하님께
예를 표하는 것입니다. 법주의 내증에 대한 어문을 이미 언급하였으니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1977년 이케다의 불교사관을 말한다의 발표 내용과 이후의 사정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글에서 밝혔습니다. 내용도 보지 않으시고 토론에 임하시나요?
그저 외면하고 싶을 겁니다.
차의 답- 많은 분들이 위의 두 가지 답을 보실 것입니다.
● 주사친의 삼덕은 저의 신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님의 신념이 아닙니다”라고 말씀은 권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대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말법이후 진미래제까지 주사친 삼덕을 갖추신 부처님은 니치렌대성인 오직 한분이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화경의 의는 일체중생 개성불도의 경이니라”(어서 1307쪽) 개성불도는 모두 불도를 이루느니라 라고 읽습니다. 부처가 될 수 없다면 수행의 의미도 없습니다.
“총별의 이의를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성불은 엄두도 못 내며”(어서 1055) 총은 니치렌 대성인님, 별은 우리들 제자입니다.
“가을의 벼에는 조와 중과 만의 세 가지가 있지만 1년 내에 거둬들이듯이, <중략> 일생 내에 제불여래의 일체불이라고 아울러 생각해야 할 일이니라”(어서 411쪽) 열심히 수행하면 모두 부처가 된다는 대성인의 약속입니다.
정의님께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어서를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당시 예하께 사죄한 것은 거짓이 되는데요.
이는 학회의 독립 결별 내지 종문 지배 야욕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차명호 답- 귀하께서 말씀하신 ‘1977년에 발표한 불교사관’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못하니 무엇을 사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죄가 학회의 독립결별을 위해 사죄했다는 의미인가요?
잘못을 사과한 순수한 감정도, 올가미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닛켄종입니다. 닛켄은 7가지 대죄 중에 자신의 잘못은 한 가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천제입니다.
정의님은 “신분은 학회원이었지만, 늘 이케다 회장과 불교회의 조직 문화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하는 학회를 평가하기 위해 입신한 것입니다. 평가란 자신이 기준입니다. 자신의 지혜로 부처의 조직을 평가한다는 것은 대 증상만의 사람입니다.
정의의 답
이케다가 1977년 발언에 대해 무엇을 사과하였는지 제 글을 보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세이쿄 신문을 찾아보시던가요. 교의 왜곡에 대해 사과한 뒤에 다시 그와 같은
교의를 세워 이케다교로 독립한 마당에, 그 사과가 순수한 감정이라니요?
닛켄법주의 없는 죄를 만들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하니, 저도 님의 죄를 일일이 열거하고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다그칠까요? 없는 것을 어찌 증명하시나 볼까요?
학회를 평가하기 위해 입신한 것이 아닙니다. 저도 님처럼 대성인님의 불법을 만나
일생성불을 바라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엄밀히 말해볼까요?
과거 도다 회장이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의 소속은 학회입니까? 종문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도다 회장은 명쾌하게 답변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련정종 신도이다 라고..
저는 학회가 파문되기 전, 일련정종 신도 단체였을 당시에 입신하였습니다.
차의 답- ● “제 글을 보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세이쿄 신문을 찾아보시던가요”라는 말씀이 듣기 거북한 명령이나 강압적인 자세로 들립니다.
● “교의를 세워 이케다교로 독립한 마당에, 그 사과가 순수한 감정이라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을 바르게 하랬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교의를 세워 독립했습니까? 아니면 닛켄이 학회를 파문해서 독립했습니까? 닛켄의 학회 파문통지서를 확인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 “과거 도다 회장이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의 소속은 학회입니까? 종문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도다 회장은 명쾌하게 답변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련정종 신도다라고”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파문 당하기 전에는 당연히 일련정종 신도였습니다.
● “저는 학회가 파문되기 전, 일련정종 신도 단체였을 당시에 입신하였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그룹장에서 반장으로 활동하다가 학회를 탈회하여 일련정종 신도가 된지 1년 남짓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룹장이면 남자부 역직이고, 30세 이상이면 남자부에서 졸업하니, 졸업 후 장년부에서 반장으로 활동하다가, 신도가 된지 1년 남짓하다니 30대 중반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자식 같은 생각에 어서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였는데,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공식사과와 참회의 발표 후 십수년을 면종복배하며 신생교단 이케다교를 만들기 위한 역사가 됩니다.
차명호의 답-
정의님은 학회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몰라도 편중된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닛켄의 방법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하고 게십니다.
만약 학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라면, 대성인으로부터의 어떤 질책을 받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십니까? 어서 근본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신비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좀 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박사는 ‘종교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인생에 대한 태도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주의 신비로움과 그 속에서 인간이 지닌 역할의 어려움에 관한 근본문제에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운 해답을 밝힘으로써, 또는 이 우주 속의 삶에 실제적인 잘못을 가르쳐 깨우침을 줌으로써, 인생의 어려움을 대처하게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 중에, 어떤 신앙을 선택할 것인가? 망서리는 사람들에게 명쾌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종교는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인생은 변화의 연속입니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생로병사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영원한 과제입니다.
대문호 빅톨 위고는 “인간의 생활에는 가장 행복한 것이라도 그 깊은 곳에는 항상 기쁨보다도 많은 슬픔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실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엄한 현실 속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 ‘보다 멋지게 살고 싶다’고 마음 속으로 바라며 행동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 ‘인간의 바람’에 대한 해답이 종교입니다. 그런 바람이 있었기에 종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인간의 바람에 대한 니치렌 대성인의 해답은 무엇이가? 인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르쳐 주시고 있는가? 그 해답은 한마디로 ‘일생성불’입니다. <어서의 세계에서>
‘일생성불’은 이 일생 동안에 반드시 부처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성인께서는 “가을의 벼에는 조와 중과 만의 세 가지가 있지만 1년 내에 거둬들이듯이, 이것도 상중하의 차별이 있는 사람이지만 똑 같이 일생 내에 제불여래의 일체불이라고 아울러 생각해야 할 일이니라”(어서 411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벼에는 조생종과 만생종이라는 종류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1년 내에 반드시 수확하듯이, 사람도 본래 여래(如來)로서 빠르거나 늦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일생 동안에 반드시 불계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금 나의 일생은 부처가 되기 위해 있다는 뜻입니다. 실로 충격적인 가르침입니다. 이 말을 되세기면 우리 인생의 의미가 한층 높아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성불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어떤 삶이 되는가? 라는 물음이 절실하게 다가 옵니다.
정의님, 한번 어서를 깊이 배독해 보시지요. 자신의 지식이나 지혜로 어서를 평가하려는 것은 대 증상만입니다.
정의의 답
차명호님은 종문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 몰라도 편중된 사고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케다와 학회의 방법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하고 게십니다.
만약 종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라면, 대성인으로부터의 어떤 질책을 받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십니까?
어서 근본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차의 답- 대성인께서는 “사자보고 짖는 개는 창자가 썩으며”(어서 1080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하가 그렇게 말씀하니, 누가 사자이고 누가 개인지 체험만 남았습니다.
체험할 일이 남았겠습니까.
똥인지 된장인지 금인지
먹어봐야만 알고
죽어봐야만 저승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케다선생님이 삼덕을 갖췄다는 동지의
견해에 존중하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렇게 무조건 들이미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법화경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법화경의 심을 죽인다ㅠ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