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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오바/ 갑질文化 法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가 우선

myungho 2015. 3. 31. 12:04

(155) 오바 SGI이사장/

갑질文化 法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가 우선

   

 

 

95사태의 증언자들이

       분열, 퇴전, 사망, 이주 등으로

               조직에서 뵙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광포의 미래를 위해 

                             생생한 증언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결국 신앙자는 불법을 중심으로 하는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가, 둘 중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퇴전자는 ‘법’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利害)를 우선 시 했습니다. 그 마음의 틈에 마()가 파고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심에 마가 틈탑니다.

 

오랜 기간 스승과 함께 신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결 속에 사제가 있습니다.”라고 있는데

사제(師弟)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95사태의 소용돌이 속에, 혹자는 개혁연대로 분열되었고, 혹자는 사망했고, 혹자는 퇴전하고, 혹자는 내득 신앙하고……

선생님께서도 "SGI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아무리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목격자라 해도,

진상규명 없이,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지금의 분열된 결과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광포를 위한 일이기에, 

부족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진실과

앞으로 진상규명하여 밝혀야 할 문제까지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 자기중심에 마()가 틈탄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것은 정사를 정하는 싸움의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아쓰하라 법난이 한창일 때, 닛코 상인이나 난조 도키미쓰는, 미노부에 계신 대성인에게 하나하나 보고하고 구체적인 지시나 지도를 구했습니다.

대난에 ‘사제일체’로 맞섰습니다.

 

★ 우리는 대성인께 보고할 수 없으니,

어서와 선생님 지도말씀을 근본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갑질 문화는 SGI에도 있었습니다.

스승처럼 행동했던 이즈미 지도장과, 방법의 집행부를 편애한 오바SGI이사장입니다. 그분들이 저지른 행동은 갑질이지 사제가 아닙니다.  

 

이것에 비해 적에게 속아 퇴전하고 예전의 동지에게 적의를 드러내어 반역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이신보산미보 등입니다.

그들은 대성인의 명을 받고 아쓰하라에 파견된 이른바 ‘간부’였습니다.

 

어째서 퇴전하고 반역한 것인가?

그것은 원질과 질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성인으로부터 파견된 산미보는 후배인 닛코 상인에 대한 질투가 있었습니다. 산미보는 닛코 상인보다 선배 격이며 히에이산에도 유학한 학승이었습니다.

 

자신이 인텔리라고 자만한 산미보는 아랫사람으로 생각했던 닛코 상인을 보좌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질투의 불길을 태웠던 것에 마성이 침투했다고 니치코 상인은 통찰하시고 있습니다. 스승의 명으로 파견되어 후배 밑에서 활동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마가 틈탔습니다.

류센사의 교치 등은 문하의 단결을 무너뜨리기 위해 원질하는 인간을 끌어들였습니다.

 

SGI회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신앙자는 불법을 중심으로 하는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가, 둘 중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퇴전자는 ‘법’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利害)를 우선 시 했습니다. 그 마음의 틈에 마()가 파고듭니다.

창가의 인생만큼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 박재일은 후배에 대한 질투 보다는, 선배에 대한 하극상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박재일은 전임자로부터 인수받는 과정에서, 건설과 은행 등의 장부에서 박덕현 이사장의 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이런 약점을 국제부의 스츠미, 이또와 협잡하여, 이즈미 지도장에게 보고 했고, 박덕현은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숨겨주기 바래서인지 박재일이 시키는 대로 끌려다녔습니다.

 

박재일은 손도 대지 않고 이사장의 힘을 빌려 자신에게 저항하는 천적들을 손쉽게 하나하나 제거해 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사서류 결제 난에 찍힌 박덕현이라는 인장이 증거입니다. 이도 진상규명에서 밝혀야 합니다.

 

● 선후배라는 관계에 얽매지 말고 서로가 제자로 법문을 듣도록

 

오랜 기간 스승과 함께 신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결 속에 사제가 있습니다.

 

사도에 유배되어 있던 니치렌 대성인은, 고참인 세 명의 문하에게 중요한 법문을 쓴 글을 보냈습니다.

그 글에는 지금은 명확하지 않으나 그 추신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60년만에 핀 행운의 대나무 꽃>

“나의 곁을 직접 방문하여 법문을 익히고 가는 사람에게 법문을 들으세요. 그렇게 하면 서로 사제가 될 것이다”(어서 1223)라고.

사도의 대성인 곁을 방문하여 직접 법문을 들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도록 하세요, 라는 말씀입니다.

 

시조 깅고를 비롯해 여러 문하가 대성인을 구도하여 사도로 건너갔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장로들에 비해 후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제자와 같은 구도심으로 법문을 듣도록 고참 문하에게 지시하셨습니다.

 

선배도 후배도 서로 구별 없이 스승을 구도하는 속에 단결이 있다고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선배나 후배, 여러 인간관계에 얽매여 순수하게 법문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사제의 길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단결도 없습니다.

퇴전한 자들은 이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제의 길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 요즘 신조어(新造語)갑질 문화(갑의 잘못된 횡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땅콩 한 봉지에 사회문제로 고질화 된 갑질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95사태의 갑질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처음 이즈미 지도장은 스승을 구도하며 사신홍법의 정신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본인이 스승인양 행세하며 갑질로 변해 회원 위에 군림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를 이용한 자가 박재일과 국제부의 스츠미, 이또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박덕현 이사장의 비리를 지도장에게 보고하며, 자신들에게 저항자는 사람들을 제거해 갔습니다. 

 

5.15지도에 박재일은 제멋대로 불제자를 해임이나 제명시킬 자격은 없다고 있지만, 당시는 지도장의 허락 없이 박재일 단독으로 간부를 제명시킬 수 없었습니다.

 

내정간섭이라는 책략으로 SGI로부터 인사권을 빼앗은 집행부는 이사장 단독으로 인사권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인사위원회가 있지만 이들 임명권도 이사장이 갖고 있으니 불법민주주의는 이름뿐 완전 왕권 일인 독재체제입니다.

 

무고한 회원들을 SGI반대파로 매도하여 제명시킨 사건이 그 증거입니다.

이러한 이사장과 지도장의 갑질문화도 진상규명에서 밝혀야 합니다.

 

허영을 벗어 던져라!

 

거울로 삼으라고 하는 말이니라.(어서 1191)

후세에 대한 훈계로써 대성인은 사제위배의 대표적인 인물로 산미보를 어서 속에서 몇 번이나 예를 드시고 있습니다.

 

산미보는 어떤 인간이었는가? 현대를 위한 ‘훈계’로서 보고자 합니다.

학재(學才)가 뛰어난 산미보는 문하를 대표하여 히에이산에 유학, 교토의 귀족 앞에서 설법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산미보는 ‘면목을 세웠다’라고 대성인께 보고 드렸습니다.

 

허영입니다. 대성인은 그 득의 양양한 보고를 엄하게 질타하셨습니다.

“이 불법은 최고의 법문이 아닌가.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는데 귀족에게 설법한 정도로 ‘면목을 세웠다’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자네는 니치렌을 천시하고 있는가”(어서 1268)라고.

 

대성인은 자신을 “전다라의 집에서 출생하였노라”(어서 958)고 당당하게 선언하시고 있습니다. “묘법을 행하는 자야말로 진짜 왕자이다”라는 기개이셨습니다.

 

당시 교토라고 하면 나라(奈良)와 대등하게 일컬어지는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거기에서 설법한 것만으로 ‘면목을 세웠다’라고 한 것은 스승을 비하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책이었습니다.

 

★ 박재일은 허영에 들떠 학력 위조뿐만 아니라, 공노에 눈이 멀어 법인등록을 빙자해 20억 이나 횡령했습니다. 1997년에 수상한 유엔세계평화 아카데미상은 종교 브로커 이존영씨에게 돈을 주고 매수한 가짜라는 것까지 폭로됐습니다.

이쯤 되면 허영도 공노도 병적입니다.  

 

“대체로 니치렌의 제자는 교토()에 올라가면 처음에는 초심을 잊지 않는 듯 하지만 나중에는 천마가 붙어서 정기(正氣)를 잃어버린다…… 산미보, 당신도 그와 같은 모습으로 되어 제천에게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오.(어서 1268)

허영을 버려라. 거드름을 벗어 던져라. 그렇지 않으면 제천의 가호는 없다. 자기편으로 할 수 없다. 엄애의 지도였습니다.

 

“필시 말투나 발음 등도 교토() 사투리로 바뀌었으리라. 쥐가 박쥐로 된 것 같이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며 시골 법사도 아니고 교토의 법사를 닮지도 아니하고 퇴전하고 반역한 쇼우보와 같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되노라. 말투는 시골 말투대로 하여라, 아니면 꽤나 어색하리라.(어서 1268)

비웃든 헐뜯든 한눈 팔지 않고 홍교 확대를 위해 나아간다. 그것이 사제의 정신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대성인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산미보는 퇴전하고 반역했습니다.

 

SGI회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위대한가? 지위를 얻는 것이 위대한가? 그렇지 않다! 아무런 지위가 없어도 창가학회의 간부로서 광선유포에 몸을 바치는 인생만큼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인생은 없지 않은가! 이 학회정신을 잊지 말라! 이것이 도다 선생님의 마음이었다. 지금 나도 같은 호소를 하고 싶다.

 

결국 존귀한 신심을 그릇되게 하는 것은 항상 ‘만심’과 ‘허영심’ 그리고 ‘질투’라는 추악한 마음입니다. 더욱이 그 뒷면에는 반드시 ‘겁쟁이’의 약함이 숨어있습니다.

유명한 “니치렌의 제자 등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라는 엄계는 다름 아닌 바로 산미보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 집행부는 내정간섭이라는 책략으로 스승을 협박하고 와다 전 SGI이사장을 추방 시키고 불교회 경제, 인사, 건설까지 강탈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바 SGI이사장은 방법자인 집행부만 편애하고 개혁연대는 방문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니 오바님은 와다 전 SGI이사장을 질투나 하는 겁쟁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법보다 자신의 감정이 우선입니다. 광포 파괴의 행동입니다. 

 

● 퇴전자의 말로는?

 

아쓰하라 법난의 때, 교치에 속아 퇴전하고 탄압에 가담한 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성인은 “오타(大田)의 지카마사 나가사키 지로 효에노조 도키쓰나 다이신보의 낙마 등은 법화경의 벌이 나타남이로다.(어서 1190) <통해: 오타 지카마사, 나카사키 지로 효에노조 도키쓰나, 다이신보의 낙마 등은 법화경의 벌이 나타남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이신보는 낙마가 원인이 되어 이윽고 민사(悶死: 몹시 괴로워하다 죽는 것)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산미보는 변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그 사람들도 내적으로는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느니라.(어서 1191) <통해: 이 일(산미보가 사망한 일)은 그들(교치들)도 내심으로는 겁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맺음 말

 

아쓰하라 법난의 때 장승처럼 우뚝 서 싸운 청년이 난조 도키미쓰입니다.

도키미쓰는 문하들을 몰래 숨겨주고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등 박해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동지를 지켰습니다.

 

권력이 적의를 드러내며 엄습해왔을 때 대성인이 도키미쓰에게 써 보내신 편지입니다.

“원컨대 나의 제자 등은 대원을 세우라. (중략) 어쨌든 죽음은 일정이니라. 그 때의 한탄은 당시와 같으리라. 이왕이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화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라.(어서 1561) ‘불석신명’의 신심에 일어서라 라고.

 

추신에는 “이것은 아쓰하라의 일이 고마워서 말씀 드리는 답서이니라”(어서 1561)라고 있습니다. 아쓰하라에서의 도키미쓰의 싸움을 대성인은 보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을 잡으셨습니다. 도키미쓰는 “법화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라”라는 말씀에 응했습니다.

 

막부가 주시하는 가운데 영지의 크기에 비해 과도한 공사(세금의 일종)를 할당 받았습니다.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난조가는 매우 핍박한 재정이 되었습니다. 지두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키미쓰는 탈 말도 없고 아내나 아이들을 위한 의복도 부자유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속에서도 도키미쓰는 대성인에게 공양을 보냈습니다.(어서 1575) 대성인은 만년에 붓을 잡기가 곤란했음에도 불구하고 도키미쓰가 병으로 쓰러졌다는 보고에 자신의 병고를 무릅쓰고 붓을 들어 도키미쓰에게 혼신의 격려를 보내시고 있습니다. (법화증명초)

 

법화경에는 제자들의 맹세의 진지함과 기세를 나타내는 경문으로 “사자후를 작하여”(법화경 417)라고 있습니다.

‘사()’란 ‘스승이 전수하는 바의 묘법’.

‘자()’란 ‘제자가 받는 바의 묘법’. 그리고

‘후()’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부르는 음성’.

‘작()’이란 ‘일으킨다’라고 읽습니다.

“사자후를 일으키는 것은 말법에 있어서 남묘호렌게쿄를 일으키는 것이다”(어서 748)라고.

 

‘일으킨다’라는 것은 ‘능동’입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으로는 사자후가 되지 않습니다.

“스승은 외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제자가 외치는가, 어떤가, 입니다. 그것을 스승은 계속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법화경의 지혜)  

 

<참고문헌: 어서에서 배우는 사제의 승리, 개목초, 어서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