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SGI/ 톨스토이가 외치고
간디가 또 킹이 계승한 비폭력의 정신혁명
20세기, ‘전쟁의 세기’가 막을 열었습니다. 자각한 민중은 혁명을 추구했습니다. 분쟁이 불을 뿜었습니다. 거대한 폭력이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서로 죽이는가, 어째서! 톨스토이는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톨스토이는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하라>는 긴 글을 집필하여 일본과 러시아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 이대로는 인류가 절벽을 향해 전력 질주하여 멈추지 못한 채로 뛰어들고 만다, 애당초 예수도, 석가모니도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민중은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은 바뀌고 있다. “현재의 큰 전쟁은 지금, 일본인과 러시아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아니며,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백인종과 황인종의 전쟁도 아니고, 지뢰, 폭탄, 총탄으로 하는 전쟁도 아니다.
바로 지금 자각하고 있는 인류동포의 의식과 인류를 둘러싸고 압박을 가하는 어둠과 고뇌의 전쟁이다.”
인류는 같은 동포라는 의식, 톨스토이는 이 의식을 넓히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없는 시대에 톨스토이는 ‘세계시민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인류의 양심을 결집했습니다. 톨스토이가 바로 세계의 ‘정신적 지주’이었습니다. ‘양심의 지주’이었습니다.
1905년 피로 얼룩진 일요일 사건, 그리고 제1차 러시아혁명. 톨스토이는 홀로 묵직하게 버티어 서서 밀어닥치는 폭력의 탁류에 계속 저항했습니다. 1907년에 <한 사람도 죽이지 말라>, 1908년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를 써서, 혁명가에 대한 피의 제재를 그만둘 것을 호소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절대평화주의에 입각하여 일체의 폭력을 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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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람들은 톨스토이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후회 없는 삶인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추구했던 삶의 방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건 절대적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으로는 ‘나와 타인이 서로 행복해지도록 행동하는 것’ 즉 불법에서 말하는 “자행화타”입니다.
그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악과 끝없이 투쟁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폭력이 없는 세계를 향해 우선 인간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의 삶은 인간주의를 지향한 불법자의 삶 그대로였다고 생각합니다.
● 마음의 연대는 끊지 못해
1908년, 톨스토이는 80세를 맞이했습니다.
정부의 감시와 탄압이 더욱 심해진 가운데 맞이한 생일에는 국내외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축하의 편지가 왔습니다.
모스크바 레이스공장 감독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전 세계 민중의 마음을 하나로 맺어준, 진리를 위해 쉬지 않는 투사에게”라는 내용의 편지가 왔습니다.
에리티르치 공장의 노동자도 “우리는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허위에 대한 진실의 승리를 믿는 마음을 잃지 않습니다.”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공갈해도 톨스토이와 민중의 마음 연대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 신앙이 인생을 결정한다
‘인류의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다!’
- 톨스토이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동서고금의 영지(英智)를 모은 잠언집 <글 읽는 나날>을 제작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1년 365일, 매일 다른 몇 가지 잠언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나날이 알찬 내용의 사상에 접하여 자신의 마음을 고무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
★ 신앙은 자기 일념의 대혁명입니다. 아무리 창제를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공덕은 없습니다. 그 대표가 닛켄이고, 집행부입니다.
“정토라 하고 예토라 해도 둘의 차이가 없으며, 오직 우리 마음의 선악에 달렸다고 쓰여 있다”(어서 384쪽 통해) 이처럼 마음 하나로 세계가 변합니다.
톨스토이 자신의 다음과 같은 글도 있었습니다.
“신앙이 인생을 결정한다.”
“모든 것은 사상에 달려 있다.”
“선(善)한 생각은 결국 선한 행위로 이어진다.”
“악(惡)한 사상(思想)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악한 길로 끌어들인다.”
“종교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철학이다.”
“만인이 형제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다는 의식은 더욱더 인류 속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전 세계 여러 민족 간에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그저 자국에 대해서만 사랑을 설하고 언제 라도 타국과 전쟁을 할 태세를 갖추도록 말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현재 화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자기 마을만을 사랑하라고 말하며 각 마을에 군대를 모아 요새를 구축하라는 것과 같다.
이전에는 한 나라의 국민을 하나로 맺은 조국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도(지역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사람들이 이미 다양한 교통기관, 무역, 산업, 학문, 예술, 특히 도덕적 의식으로 맺어져 있는 현대에 그것은 사람들을 결합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분열시킬 뿐이다.”
● 생사를 초월하다
톨스토이의 최후는 ‘가출(家出)’이었습니다. 가출하면서도 주치의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곧바로 셋째 딸과 그 우인이 합류하고 나중에 가족도 달려왔습니다.
왜 가출했는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경우 가출은 멈춰 서지 않는 인생을 상징합니다.
부(富)도, 안락도, 모든 세간적인 명성도 내던지고 진실한 길을 지향하는 그 속에 톨스토이의 마음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SGI회장은 톨스토이의 가출과 사망에 대해 1990년 11월 3일, 창가교육동창의 모임에서 스피치 했다)
가출하기 나흘 전, 톨스토이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사형을 반대하는 원고를 의뢰하는 편지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이에 응하여 가출한 행선지에서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그로부터 9일 후, 톨스토이는 역사(驛舍)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폐렴으로 인한 자연사였습니다.
관은 민중의 손으로 운반되었습니다. (민중은) 성직자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청년, 농민, 지식인들이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1910년 11월 7일. 82세였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로 치면 1백세에도 필적하는 장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형을 반대하는 글은 11월 13일에 <유효한 수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실로 생사를 초월하여 톨스토이는 권력과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계획이다.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루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특히 내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룬다).”
나와 타인이 서로 행복해지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 이것이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 동지를 위해서 최후까지
후회 없는 생애를 이룬 죽음은 장엄한 석양처럼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최후를 새빨간 석양처럼 빛나게 하고 싶다. 벗에게 희망의 빛을 보내면서 유연한 일생을 장식하고 싶다.
‘오늘도 광선유포를 위해!’ ‘오늘도 동지를 위해!’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몸을 완전 연소시킨 사람은 반드시 영원한 대(大)공덕으로 감싸입니다. 최후에 승리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정의의 길’은 멸하지 않습니다.
혼의 바톤을 꽉 쥐고 달리는 ‘사자(師子)’가 있다면 ‘진실의 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톨스토이는 일생을 걸고 민중의 마음에 ‘희망의 불’을 밝혔습니다. 그 불꽃은 20세기에 두 차례 세계대전이 일어났음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권을 짓밟는 거대한 악(惡)과 투쟁한 마하트마 간디.
그가 톨스토이의 저작을 읽은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감옥 속에서였습니다. 비폭력 사상에 감명을 받아 수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
톨스토이는 숨을 거두기 2개월 전에 간디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에게 세계의 끝이라고 여겨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트란스바르에서 벌이는 여러분의 활동이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필요하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자신들의 농장들 중 한곳을 ‘톨스토이 농원’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경애하는 톨스토이가 꼭 기뻐해 주리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귀국한 인도에서 간디는 목숨을 건 비폭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타오르는 정신의 불꽃은 번져갔습니다.
이윽고 미국에서도 한 청년이 일어섰다. 마틴 루터 킹 박사. 공민권운동의 용감한 지도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추구해 온 사회개혁을 위한 방법을 간디가 이와 같이 강조한 사랑과 비폭력 속에 비로소 발견했다.”
킹 박사가 흉탄에 쓰러진 미국의 멤피스(Memphis), 이 땅에 비폭력의 이상을 계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하트마의 손자인 아룬 간디씨입니다.
간디 비폭력연구소를 창립하여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나도 두 차례 만나서 21세기를 주시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간디 소장은 말했습니다.
“오늘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내일은 두 사람을 그리고 모레는 세 사람…. 몇 명일지라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바꿀 것입니다.”
폭력이 없는 세계를 향해 우선 인간 자신이 바뀌어야 합니다.
● 맺음 말
톨스토이가 외치고 간디가 또 킹이 계승한 ‘생명존엄의 이상’ ‘비폭력에 의한 정신혁명’ 그것을 실현하는 중대한 열쇠는 교육입니다. 그리고 문화의 교류, 민중과 민중의 마음의 교류를 거듭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 니치렌 대성인님이 입종선언 하시고, 삼대 회장님이 계승한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입니다. 광선유포를 실현하는 열쇠는 신행학입니다.
분열된 한국SGI가 하나로 되기 위한 방법으로 개혁연대와 불교회의 청년부와 회원 간의 교류를 확대해 가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확대운동을 우리 창가학회가 세계에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 “폭풍의 95년” 역사의 진실을 전달하는 일은 미래의 희망을 위탁하는 일입니다. 오늘 한 사람에게 이 글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내일은 두 사람, 모레는 세 사람…… 몇 명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우린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우린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선 한 걸음 내 딛습니다. 걷기 시작하지 않고서는 얼마나 먼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영원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걷는 이 길은 전부 행복의 꽃이 핍니다. 자신이 격려한 친구는 모두 영원히 보배로운 친구가 됩니다. 자신이 결정한 이 길은 인류의 비원인 평화의 길입니다.
역사의 주역은 민중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민중이 강해져야 합니다. 현명해져야 합니다. 위대한 인간혁명을, 한 사람 또 한 사람 이렇게 이룩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마을까지는 멉니까?’ 라는 통행인의 물음에 현자는 대답했다.
‘걸어가 보세요.’라고.
걷는가! 걷지 않는가! 멈춰 서는가! 위대한 꿈을 향한 도전을 개시하는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입니다.
우리는 창가의 길을 갑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동지가 고난을 이겨내고 개척한 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나아가고 싶습니다. 머리를 들고 가슴을 펴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인생의 길을!
세계의 벗과 어깨동무하면서 영원한 희망의 이 길을!
<참고문헌: 池田大作, 특별강좌 톨스토이를 말한다, 인생은 드라마 주역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