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부처가 되는 것은 유혹을 물리친다는 행위
“악과 싸우고 철저하게 승리해야 비로소 선악불이가 된다”(법화경의 지혜, 3권)고 말씀하셨는데, 그 놈의 돈이 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때문에 악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집니다.
따지고 보면, 집행부도 돈 때문에, 조직분열이라는 인권유린의 길을 선택했고, 이를 지켜 보던 대부분의 회원들도 입을 다물고 “여동죄”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설령 법이 우수해도 그 법을 수행하고 넓히는 사람들이 특별한 계급이나 권위, 입장 등으로 서로 차별하는 의식이 생기면 그 종교의 생명력은 떨어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행부는 신심이 아닙니다. 이사장이라는 권력의 힘이 즉 법(法)입니다.
그 증거를 대볼까요? 박재일의 비리를 진상규명 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결사 반대한 사적대 행위, 모 신문사 사장을 시켜, 진상규명을 강행할 경우 내정간섭이라고 일본신문에 보도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선생님께 보내게 사주한 죄,
박재일과 집행부는 이런 사실에 분노하여 저항한 개혁연대를 ‘SGI반대파’로 매도하여 조직을 분열시킨 파화합승의 죄, 95사태가 일어 난지 20년이 됐어도 권력이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요?
“악과 싸우고 철저하게 승리해야 비로소 선악불이가 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되면 방법을 저지른 박재일과 집행부, 그리고 이를 보고 침묵하여 여동죄를 범하고 있는 회원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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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많이 불렀어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단지 굴러온 호박을 기다리는 듯한 자세로는 기복신앙과 다름없습니다.”(법련 2015, 2월호, p. 15)
마음을 혁명하기 위한 신심입니다.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대표가 닛켄과 집행부입니다. 제목만 부르면 공덕이 나온다는 생각은 미신입니다.
● 부처가 되는 것은 유혹을 물리친다는 행위 그 자체 속에서 찾아야
마(魔)를 타파하는 것과, 부처가 되는 것은 같습니다.
★ 박재일과 집행부는 이기주의라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고, 권력과 돈이라는 유혹에 지고 말았습니다.
아래 글은 <법화경의 지혜, 4권, 228-229쪽>의 내용입니다.
“불계가 나타난다는 것과 마군을 항복시킨다는 것은 일체인 것입니다. 마는 안에도 밖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에 이기는가 지는가는 자기 자신의 일념입니다.
마에 결단코 분동되지 않는 자신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악마를 격퇴하고 나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악마를 항복시키는 것과 깨달음을 얻는 것은 동일한 사실의 표리관계에 있다”(고타마 붓다, 1)
“부처가 되는 것은 유혹을 물리친다는 행위 그 자체 속에서 찾아야만 한다. 부단한 정진이 그대로 불행(佛行)인 것이다. 깨달음을 열어 부처라는 별개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같은 책)
“불계란 묘법과 일체가 된 경지이며 부처란 묘법을 스승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묘법을 끝까지 수지하는 경지 자체가 불계입니다.
석존은 성도한 직후에 묘법을 스승으로 하여 계속 살아갈 것을 맹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법을 깨달았다. 그 법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의지하도록 하자’(앞 책)
그리고 그 말대로 생애를 완수했습니다.
입멸할 때의 말에도 ‘나는 자신에게 귀의하는 것을 완수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귀의한다는 것은 내재하는 영원한 묘법에 귀의한다는 것이지요”
●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는 신(信)과 노력(努力)과 지혜(智慧)
마음을 바꾸려는 노력도 없이, 안이한 생각만으로 성불될 리가 없습니다.
대성인은 “신명을 버릴 만큼의 일이 있어야만이 부처가 되는 것이라고 추측하였는데”(어서 891쪽) 부처란 인간입니다. 싸움을 계속하는 인간입니다.
부처란 어딘가 별세계에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범부즉극(凡夫卽極)입니다. 사제정신에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가, 어떤 사람은 교사, 어떤 사람은 주부, 어떤 사람은 농업에 종사하는 것처럼 사회의 다양한 사회활동 속에 불계가 약동한다. 그것이 법화경의 관점입니다.(법화경의 지혜 4권 234쪽)
“도다 선생님은 엄하게 지도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약 직업에 충실하지 못한 자가 있다면 그것은 방법이라고 나는 단정짓는 바이다’”(법련 2015년 2월호, 104쪽)
★ 박재일과 집행부는 선생님의 직원입니다.
직원이면서 어떻게 ‘진상규명하라’고 의탁한 선생님의 말씀을 내정간섭이라고 협박할 수 있었을까요? 부정부패를 저지른 박재일은 그렇다 치고,
주위의 직원들은 왜 침묵했을까요?
아래 내용은 기심의 마와 투쟁한 석존의 이야기입니다.
“석존도 끊임없이 마와 싸웠습니다. 마와 계속 싸우는 것과 부처인 것은 실은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전을 읽으면 석존이 생애 마(魔)와 싸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마와 싸울 때마다 석존은 마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그 무기는 신(信)과 노력(努力)과 지혜(智慧)로 되어 있습니다”(법화경의 지혜 4권 228쪽)
★ 박재일과 집행부 직원들은 법화경을 믿는다는 신(信)이라는 위대한 무기를 버리고, 보신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집행부는 지금이라도 진짜 신심을 시작해야 합니다.
● 맺음 말
“법화경을 믿는 마음이 강함을 이름하여 불계라 한다”(삼중비전초)
불법을 지키자, 불자를 지키자, 난을 내 몸으로 받아 가자는 사자왕의 마음이야말로 불계가 용현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신심이란 광선유포를 위해 자기의 일체를 바쳐간다는 수행입니다. 자기 중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순교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도, 도다 선생님도, 나(이케다)도 오직 광선유포를 위하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자신을 위하는 일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일은 가장 나중의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과 싸워 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선비구가 법을 깨뜨리는 자를 보고, 그냥 두고서 가책하고 구견하고 거처하지 않는다면 응당 알지어다. 이 사람은 불법 중의 원적이로다”(어서 236쪽)
가책하지 않으면 불법 중의 원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