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인권투쟁/ 김인수 이사장 연임할 것 같아
김인수가 연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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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의 혁명을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 승리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제목을 불러야 한다.
“……에 미친 사람”이라고 할 만큼 집념이 있어야 후세에 널리 빛나는 역사가 구축된다.
“자 전진이다. 단호히 더욱 높은 곳을 목표로 하라”
주저할 필요는 없다.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된다. 부모님을 위해, 많은 벗을 위해 용감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젊은 여러분의 상쾌한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기다리고 있다.
형식주의는 발전하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현실적으로 광선유포를 추진할 수 있는가? 리더는 이점을 열심히 기원하고 기원하며, 끝까지 노고해야 한다.
스승을 위해! 동지를 위해! – 먼저 자신이 우뚝 서야 한다.
★ 도다 선생님도 종문의 권위에 저항하며 75만 세대를 달성하셨듯이,
개혁연대도 집행부 개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절복목표다. 그러면서 개혁을 위한 대화, 소송, 팻말시위 등도 생각해야 된다는 등이 현실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이 혼이 불타는 곳이 간사이다. 부탁한다!
리더 자신이 구도하고, 신심을 연마해야 한다. 자신을 혁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사제의 보관(寶冠), 하,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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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간사이입니다. 간사이란 사제정신의 이명(異名)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청년에게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간사이다”라는 청년의 혼으로, 스승을 위해! 동지를 위해! –
먼저 스스로 우뚝 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철권 독재정치에 감연히 맞선 YS
군부독재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 독재정치에 감연히 맞서 투쟁했고,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목숨으로 항거했습니다. 그는 형식주의를 배제했습니다.
몇 번이고 전에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의 어록 중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유명합니다. 피 흘리지 않은 민주주의는 사전 속 단어에 불과합니다.
군부독재는, 바통을 이어가며 닭의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 성공하든 실패하든 쿠데타는 쿠데타
YS의 어록에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쿠데타는 쿠데타”라는 말도 있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는 지난 1995년, 검찰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다며 내세운 논리였습니다. 당시 서울지검 1차장은
“피의자들이 정권창출과정에서 취한 일련의 조치나 행위는 사법 심사가 배제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합니다.”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분노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SBS 취재팀에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쿠데타는 쿠데타”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발표한 검사를 내가 혼을 내줬습니다.
뭐 독일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래요. 어디서 지식(知識)을 알아도 말이야, 그런 거 못된 거 배워 가지고 말이야. 써먹고 그런다고……”
쿠데타를 일으키긴 했지만 이미 집권해 국정을 책임졌던 전직 대통령을 단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반대 의견도 많았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느냐, 그런데 나는 그거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소급 처벌은 안 된다는 법 상식을 깨고 5.18 특별법을 제정해 상황을 뒤집었습니다.
1995년 12월 3일 SBS 뉴스에 “전 씨는 오늘 새벽 경남 합천 생가에서 검찰 수사관들에 의해 압송됐습니다.” 결국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된 겁니다.
“이 둘을 결국 같은 날 구속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감옥에서 석방할 때도 같은 날 내가 석방했거든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쿠데타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였습니다.
“나는 그거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성공하고 실패하고, 쿠데타는 쿠데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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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 때문에 2명의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 가능했습니다.
청년들은 쿠데타의 주범인 박재일, 여상락, 김인수를
나란히 진상규명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 쿠데타는 비합법의 무력적 기습에 의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일
한국의 민주화도
박정의, 전두환, 노태우 3인의 군부정권을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두 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학회 청년들도 쿠데타 세력인
박재일, 여상락, 김인수 3인의 이사장을 진상규명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정치권력의 3인과 학회권력의 3인이 권력 대물림에서 닮은 꼴입니다.
쿠데타는 비합법의 무력적 기습에 의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일입니다.
(1) 박재일은 박덕현 이사장을 퇴출시키기 위해 ‘안기부납치 조작사건’을 음모했습니다.
(2) 자신에게 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회원들의 인권을 탄압했습니다.
(3) 선생님으로부터 이를 규명하라는 5.15지도를 받고도, 진상규명에 결사반대하며, 오히려 내정간섭이라고 선생님을 협박하고 사적대 했습니다.
(4) 내정간섭이라는 책략으로 와다 SGI이사장 일행을 추방시키고 불교회 공양금과 인사권을 탈취해 갔습니다.
(5) 탈취한 인사권으로 저항하는 개혁연대를 ‘SGI반대파’로 매도하여 제명시키는 등 화합승의 조직을 4개로 분열시켰습니다.
박재일과 집행부는 부정부패, 인권탄압, 스승협박 등의 무력적 기습으로 불교회를 탈취한 집단입니다.
● 맺음 말
후배님은 ‘김인수가 연임할 것 같다’는 말씀하셨는데, 선생님께서는 “물이 흐르는 신심”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 ‘516쿠데타 마지막 생존자 김종필’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JP는 증언록에서 5.16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며 부패한 군의 개혁과 장면 총리가 이끄는 무능한 정부의 개혁을 위해 “혁명이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5.16을 4.19와 같은 혁명으로 묶고, 전두환 일당의 쿠데타인 12.12와는 구분하려는 JP의 노력은 집요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승리자가 독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95사태 ‘마지막 생존자 박재일’ 아니면
‘……여상락’ 아니면 ‘……김인수’라는 글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누군가가 95사태를 쿠데타로 인정하지 않고
부정부패와 인권탄압을 미화하려 들 때, ‘폭풍의 95년’과 ‘혁명의 푸른 하늘’은 이를 반박할 증언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