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2016 연초에 받은 메일
<세계광포 신시대 확대의 해>
2016.01.04 안녕하세요. 요즘 정의의 마음을 잊고 살다가 블로그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는 회원의 입장에서 폭풍의95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박덕현이사장님을 매우 존경했었고 궁금하고 지금도 어디선가 광포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최근 242글을 보고 참아왔던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 "한국SGI에 바란다 53쪽"내용을 알고 싶고, 앞서 글에서 써오신 비리나120억 같은 얘기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요. 박덕현 전이사장님에 대한 중상모략일 가능성은 없는지요?
왜냐하면 한국 광포역사에 많은 성과를 이뤘고 이케다선생님도 박덕현전이사장님을 매우 아끼셨고 훈련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515지도에도 박덕현 이사장님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비리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선생님과 SGI간부들은 알고도 말하지 않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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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덕현이사장님을 매우 존경했었고 궁금하고 지금도 어디선가 광포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팔, 구십 년대 신심 하신 분 중에 박덕현씨와 인연이 없으신 분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그는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최초로 탄생한 청년부 출신 이사장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회원님들뿐만 아니라 이즈미 지도장, 그리고 이케다 선생님까지도 그에게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고 생각합니다.
광포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온 저의 인생도 박덕현씨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즈미 지도장의 권위에 저항한다고 활동정지를 당하고 불교회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도, 그는 저와 집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해 줄 정도로
저에게는 청년부 시절부터 각별한 존재였습니다.
이즈미 지도장의 권위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마(魔)의 실체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당연히 새로운 직장이 필요했기 때문이지만,
보이지 않는 마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기가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돈도 없고, 영어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는 미국에서 고학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새벽 두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졸업도 못한 체,
면허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때면,
선생님과 한국의 동지들을 생각하며 각오를 새롭게 했었습니다.
저와 집사람 모두 박덕현씨와 맺은 광포의 추억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 사제 혈맥이 단절된 5.3그룹
세월은 흘렀고, 2010년 아내와 저는 한국을 방문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박덕현씨였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저와 집사람을 환영해 주었고, 그의 측근들과도 식사를 같이 하며 분에 넘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이미 사제정신도 없었고, 옛날에 묘법의 이검을 휘두르며 말달리던 기백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선으로 가득 찬 허풍쟁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생님과 연결도 안하고 있었고, 통역 이또상이 편지를 가로챈다는 이유만으로 SGI와도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집행부와 싸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53그룹은
신심의 혈맥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실망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집사람과 저는 미국으로 돌아와 5.3그룹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본존님께 기원하며, 박덕현씨과 그의 측근들에게 20여 차례에 걸쳐 간언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상근, 이종용, 우영택, 안경만, 이혜순 등등의 분들을 만나게 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측근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중에는 일부를 말씀드면 아래와 같습니다.
“개혁연대의 목표는 진상규명입니다.
신한위도 오삼그룹도 불교회 개혁을 위한 연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제입니다. 선생님께 구도하는 것입니다.
아사세왕도 제바달다의 꼬임에 빠져 자기 아버지까지 죽였습니다.
마침내 등창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과의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결국 석존이라는 위대한 스승에게 구도하여 변독위약의 승리를 쟁취합니다. 자신이 만든 인과법칙으로 오는 보복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제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제바달다는 박덕현씨이고, 아사세왕은 그의 측근에 해당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가책(呵責)하는 자는 이는 나의 제자(弟子)이고”(어서 236쪽) 동지를 무명에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법화경대로 가책하는 것뿐입니다.
● 우선 “한국SGI에 바란다 53쪽”내용을 알고 싶고,
앞서 글에서 써오신 비리나120억 같은 얘기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요.
“한국SGI에 바란다 53쪽”의 책자는 신한위 본부에 연락하면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확인해 보시고 구할 수 없으시면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앞서 글에서 써오신 비리나120억 같은 얘기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지요”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박덕현씨가 저지른 방법행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수백채의 회관건립 과정에서 발생한 건설비리와 기하학적인 공양금으로 빚어진 은행 리베이트 등입니다. 이는 박재일이 총장에 임명되면서 인수인계 과정에서
일부 밝혀졌지만, 이사회의 문책에 응하지 않아 시인한 것으로 되었으며,
수면아래 보이지 않는 그의 비리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2) 자신의 비리를 숨겨주는 대가로 박재일의 정적을 무차별 인권 유린한 범죄행위입니다.
해임과 제명인사의 최종 결재자는 이사장입니다. 인사서류는 불교회에 보관 중이니 언제든 확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3) 다음은 이사장 직을 흥정했다는 120억 문제입니다. 저도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분의 말로는 증인의 녹음 기록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녹취록을 갖고 있다 해도 본인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이들의 입을 열게 하려면,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이를 폭로하여, 박덕현과 박재일로부터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으로 고소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맞고소 등으로 법정에서 일체를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신홍법의 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한 적임자로 문제를 제기해 주신 원로 분과 녹취록의 증인, 그리고 차명호 저라고 생각해, 폭풍의 95년과 혁명의 푸른 하늘에 120억 사건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창가타임즈 20통의 방법가책문’과 함께 어떻게 진행되고 해결될지
저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내 걸 수 있는 복운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봐 주셔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5.15지도에도 박덕현 이사장님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비리내용들이 사실이라면 선생님과 SGI간부들은 알고도 말하지 않은 건가요?
박덕현씨 비리와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위에서 밝힌 그대로입니다.
대성인께서는 “한 사람을 본보기로 하여 일체중생 평등함이 이와 같다.”(어서 56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재일을 본보기로 박덕현의 인권탄압도
똑 같은 범죄행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박덕현의 비리는 대쪽 같은 이즈미 지도장이 이미 선생님과 SGI에 보고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5.15지도에서 왜 박덕현씨의 비리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집니다.
SGI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차별 제명당한 회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신생한국위원회를 개설하여 진상규명에 들어가다 보면, 박덕현씨의 비리는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다’ 라고,
그러나 박재일과 집행부는 자신들의 비리가 폭로될 것을 두려워해
진상규명에 결사 반대하며, 이종달 방면장과 모 신문사 사장을 대리인으로 선생님을 협박하여 불교회의 경리, 건설, 인사권까지 강탈, 신한위를 폐지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이라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내놓을 것 같았던 박덕현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상이라면 스승을 협박한 집행부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침묵하며 신한위 위원장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닭이 새벽에 우는 것은 쓸모 있으나 저녁에 우는 것은 불길(不吉)한 것이니라, 권실잡란할 때에 법화경의 적(敵)을 책(責)하지 않고 산림(山林)에 틀어박혀 섭수(攝受)를 수행함은 어찌 법화경수행의 때를 잃은 괴이(怪異)한 일이 아니겠느뇨. (어서 503쪽)
권실잡란이란 선생님을 협박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수천 수만의 회원들을 ‘SGI반대파’로 매도해 도륙하고 있는 지금의 때입니다.
박덕현과 5.3그룹의 침묵은 “저녁에 우는 닭”과 같이 괴이한 일이 아닌가요?
부모가 늑대에게
물어 뜯기는데도 처다만 보고 있다.
이를 보고 사자신중의 반역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박재일의 안기부 납치조작음모’에도 침묵했고, ‘여상락과 집행부가 선생님을 협박하며 회원들의 인권을 무차별 도륙’하는데도 침묵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고뇌하는 사람을 구하자든가 광선유포에 목숨을 바치자는 마음도 없다. 종교를 이용하는 위선자이다”(법화경의 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덕현은 진상규명에 의해 자신의 비리와 인권유린의 범죄행위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 침묵했던 것이 아닐까요?
● 맺음 말
용기 있는 귀하의 질문에 정성껏 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당시, 부 이사장이었던 저도, 95사태를 단순히 권력의 야욕을 품은 박재일씨의 쿠데타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박덕현씨는 정의의 편이고,
박재일은 권력의 야욕을 품은 참성이라고 생각해 '박재일 타도'만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한국을 방문하여 옛 동지들과 만나며,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많은 분들과 대화하다 보니, 95사태의 실체가 하나하나 표면으로 들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즈미 전 한국지도장, 3대 박덕현, 4대 박재일, 5대 여상락 그리고 현 6대 김인수까지 95사태에 연루되지 않은 이사장이 없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난을 만났을 때 현자는 기뻐하고 우자는 물러남”(어서 1091쪽)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 된다. 난을 계기로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 보라,
그리고 철저히 신심하라, 지금보다 공덕을 열 배로 받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참성증상만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공부해 보면 어떨까요? <법화경의 지혜, 3권, 159-186쪽>을 배독하면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번에는 95사태의 원흉인 이즈미 전 한국지도장과 3대 박덕현, 4대 박재일, 5대 여상락, 6대 김인수의 파화합승의 범죄행위에 대한 대담 내용인
“좌담회/ 95사태 20년”을 게시글에 올리겠습니다.
거기에서 참성증상만에 대해 같이 공부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