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SGI 선의연대의 사명,
<오노승도 섭수에 휘말려>
니치렌처럼 외쳐라! 나처럼 싸워라!
스승이 가르쳐준 대로 행동해야 영원 불변의 승리의 길이 있다.
묘법을 근간으로 한다는 말은 자비를 뜻한다.
한국SGI 선의연대의 사명, 목차
01) 실례하지만 선의연대로 가면 뭐가 달라진다는 겁니까?
02) 한번 방법을 책했으면 됐지, 부담스럽게 계속할 필요가 있는가?
오노승도 섭수에 휘말려-
03) 사명은 무엇인가?
04) 아무리 방법을 가책해도 집행부나 한국SGI회원들이 침묵한다면?
05) 천변지요에도 침묵하고 악을 방치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06) 타국침핍과 자계반역에 대해 현대적으로 말씀하신 선생님 스피치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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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폭풍의 95년” 감명깊게 잘 보았소. 이름은 밝힐 것 없고, 지난번 인터넷에 올린 이메일 주소 보고 연락하는 것이오. 사제정신으로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아 한마디만 하겠소이다. 차명호씨가 알아서 하겠지만, 한마디로 선의연대로 빠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소.
창가타임스, 2010년 10월 10일 통달사항 중에, 역직 고하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선의연대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소. 실례하지만 선의연대로 가면 뭐가 달라진다는거요? 95사태 대담에는 선의연대가 1999년에 탄생했다고 했는데, 그러면 벌써 13년째요.
박덕현씨가 우물쭈물 싸워 보지도 못하고 조직 다 뺏긴 거나, 최일출씨가 어영부영 보낸 13년의 세월이나, 그게 그거지 다른 게 뭐가 있소? 중요한 건 대성인처럼 사악과 싸우고 삭삭견빈출, 다쓰노구치법난, 사도유죄 등을 당하는 것이 숙명전환과 광선유포의 길이 아이겠소.
선의연대도 처음에는 SGI반대파라는 소리를 들어 가며 투쟁하는 모습이 잘 나간다 싶었는데, 요즘 창가타임즈를 보면 집행부의 방법을 가책한 흔적이 없어요. 불법은 현당이세입니다. 과거에 안주해서는 안 되지요, 계속 싸워야 합니다. 집행부나 선의연대나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한 건 마찬가지 아니요?
어영부영 13년의 세월이 그 증거가 아이겠소. 싸웠다고 해도 섭수에 불과했오. 선의연대는 주눅이 들렸는지 눈치만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주판알만 튕기고 있는 것 같소? ‘섭수로는 안 된다. 절복으로 있는 그대로 파절해야 한다’는 차명호씨의 말이 나를 일깨워 주었소. 역시 절복 이었소. 그래서 나도 죽기 전에 용기를 내어 입바른 소리 한번 해보는 거요.
대통령도 임기가 5년인데, 선의연대는 13년간 일인 독재라?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선의연대, 사제직결의 신심이라고 떠들지만, 절복과 투쟁이 없어요.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고 하는데, 선의연대는 지치고 타성이고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오.
불법은 상대적이라고 했는데, 13년이 흘러도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은 집행부나 선의연대나 사제정신이 없기 때문이 아이겠오? 자신이 부족하면 후배에게 물려주면 되는데, 사람을 가장 추하고 치사하게 만드는 것이 권력인 것 같오. 자신의 욕망과 싸워 이길 용자가 필요한 때요.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후계자인 청년을 앞장 세우시는데, 어떻든 당신은 노장이지만, “혁명의 푸른하늘”의 주인공처럼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끝까지 사제정신에 살아가기 바라오. |
부인부 원로님으로 짐작되는데, 겸허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입니다. 본문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선의연대를 알게 된 것은 금년 4월입니다. 선의연대에 대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원로님이 직접 선의연대에 문의하는 것도 생각해 보시지요?
저의 개인 생각입니다만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사제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의연대의 활동은 대단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고 싶습니다.
일인 독재라고 말씀하셨지만 선거에 의해 연임되어 활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원로님의 말씀이 틀린다면, 선의연대 흠집 내기로 됩니다. 그러나 원로님의 말씀이 옳다면, 청년들이 뒤를 이을 것입니다. 선의연대에서 이에 대해 적절한 답변이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이든 당당하게 의견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의견을 위한 의견,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한다면 그저 상대에게 상처를 줄 뿐이고, 누구든 싫어하는 감정을 지닙니다. 의견이 하나의 목적을 향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의견이어야 합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의견은 핵심이 분명해야 합니다.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의견은 결국 자기자신에게 굴레를 씌우고, 마침내 사람들의 신뢰를 잃습니다.” 귀하의 말씀 요지는,
① 차명호씨는 선의연대로 빠지는 것 같다.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 사제정신에 서라,
② 절복도 중간에 멈추면 결국 섭수로 추락하고 만다. 선의연대는 추격의 손을 늦추지 마라,
③ 선의연대는 지치면 안 된다. 타성에 흐르지 마라, 타성의 요인은 일인 독재일 수 있다는 등으로 요약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귀하의 말씀 내용 중에 “섭수”와 “파절”에 대한 내용은 저의 말이 아닙니다. 선생님 지도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02) 차명호씨는 “95사태와 선의연대, 5번” 에서 “만약 과거의 투쟁에 머물러 '한번 방법을 책했으면 됐지, 부담스럽게 계속할 필요 없다'는 등, 현실에서 머뭇거리면 이는 섭수에 휘말리는 나약한 행동입니다”
“오노승도 처음에는 열심히 대성인님을 상수급사 하였지만, 약한 마음 때문에 지옥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상대(집행부)에게 지적만 계속하면, 오히려 감정만 상하게 하여 역효과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
절복과 섭수를 잘 구분하셔야 합니다. “섭절의 이문(二門)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생사를 떠날 수 있으리오”(어서 236쪽, 취의) 섭수와 절복의 이문을 알지 못한다면, 섭수에 휘말려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성불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절복이란, 상대의 사의(邪義)·사법(邪法)을 파절하여, 정법(正法)에 굴복하게 하는 화도법입니다. 정법에 굴복할 때까지 파절하는 것입니다.
섭수로는 집행부의 방법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어금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노승의 본질도 겁쟁이다. 역풍에 휘말려 타지옥이 되어버렸다. 오노승도 섭수에 휘말리고 말았다”라고 힐책 하셨습니다. 섭수는 타지옥입니다. 귀하처럼 상대방 감정이나 살피고 있으면, 오히려 상대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돕는 꼴이 됩니다.
후손들에게 ‘선의연대의 본질은 겁쟁이였다. 섭수에 휘말리고 말았다. 오노승과 같았다’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중간하게 가벼운 마음으로는 광포의 세찬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망설이거나 두려워하거나 방심하면 안 된다. 결단하라, 반드시 이긴다고 정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선양하고 스승의 정의를 외칠 수 있다. 이보다 더한 명예는 없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이 일을 만나기 위해서 였도다”(어서 1451쪽 11행) 긴 인생 속에서 여기가 승부처입니다, 지금이 중대한 승부의 순간입니다. 이는 법련 2012, 12월호 35쪽에 나오는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지금 우리들 각자가 광선유포의 정열에 불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마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03) 사명은 무엇인가? |
선생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어본존의 대 공덕을 받고 최고로 행복해지는 때”(세이쿄신문1964,1.1자)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굉장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모든 인간은 ‘행복이 투쟁의 목적’입니다. 또한 행복이야말로 학회가 출현한 인연이자 전진하는 원점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은 사명을 완수하는데 있다. 따라서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입니다.
초창기의 벗은 경제적으로 빈약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을 위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반드시 행복해져요’라고 진심을 다해 말해도 ‘당신이 부자가 되면 할게요’라고 비웃음을 사고 문전박대 당했습니다. 그래도 가슴을 펴고 계속 걸었습니다.
왜일까? 긍지에 불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일을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것을 걸만한 긍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걸만한 창가의 철학이 있다. 학회라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스승이 있다. 그 기쁨이 긍지로 불타올랐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비록 가난해도 경애는 대부호였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마음의 귀착점은 지옥계입니다.”(법련 2012,11, 44쪽)
그러면 사명이란 무엇인가!
<법화경 용출품>에는 무수한 지용보살이 대지에서 솟아 나왔을 때, 미륵보살이 질문하기를 “지용보살은 어디에서, 무슨 까닭으로 모였는가”라고, 민중구제야말로 지용의 보살인 우리의 사명입니다. 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소극적이면 안됩니다. 앞으로, 앞으로! 스승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면 안 됩니다. “어서는 그저 재주와 지혜로 읽으면 모릅니다. 온 생명을 다한 신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지용의 보살은 어디에 출현하는가? “사람을 밝히면 즉 오탁의 생이고 투쟁의 때이니라”(어서 254쪽) 가장 괴로워하는 민중 속입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으면서 한 사람을 구하는 투쟁을 펼칩니다. 이 정신이 법화경입니다.
04) 아무리 방법을 가책해도 회원들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계속 집행부나 한국SGI회원들이 침묵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
이런 질문에 답하실 분은 대성인과 선생님뿐입니다.
선시초에는 “제5의 5백년 때는 악귀가 그몸에 들어간 고승들이 온 나라 안에 충만하리라,
그때 지혜있는 사람이 한 사람 출현하리라.
앞서 말한 악귀가 몸에 들어간 고승들이 그때의 국왕이나 신하 그리고 서민들을 한패로 끌어들여 지혜있는 사람을 악구매리하고, 장목으로 때리고 와륵을 던지며 유죄와 사죄에 처하리라.”
“그 때 천변지요가 몹시 일어나리라”(어서 259쪽 취의)라고 있습니다.
일본의 스나미 등의 천변지요를 보면 정말 무섭습니다. 한국에도 태풍과 강추위 그리고 급변하는 기후변화는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05) 천변지요에도 침묵하고 악을 방치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
대성인께서는 “천변지요로써 보여준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천이 이웃 나라에 명령해, 앞서 서술한 그 나라들의 악왕, 악승들을 책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없었던 큰 전란이 이 세상에 일어나리라”(위의 책, 같은 쪽)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06) 타국침핍과 자계반역에 대해 현대적으로 말씀하신 선생님 스피치를 듣고 싶습니다. |
현대적으로 말하면, 타국침핍 난은 침략을 말하고, 자계반역 난은 내란을 말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다시 말해 타국침핍 난이 끝나고 자계반역 난이 한창일 때, 은사께서는 ‘화의(化儀)의 광선유포를 성취하는 방정식은 대성인 재세 때 일어난 칠난의 모습이 거꾸로 된 순서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치계의 자계반역, 기업 내의 자계반역, 각종 단체의 자계반역 등 크건 작건 일본 전체가 자계반역난입니다”(법련 2012, 12, 5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석자들은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소련의 최고 권력자의 실각이야말로 자계반역 난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행복해지려면 일본의 왕불명합을 실현하고, 또 세계 광선유포를 성취해서 불국토를 건설하는 길뿐입니다. 그러한 선구답게- 한번은 죽을 목숨입니다.
자신도 영원한 대 공덕을 받고, 당연히 대대손손 대 공덕을 받으며, 이 일생 묘법유포를 위해 용감하게 힘껏 싸웁시다. 이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다리는 태국 방콕으로부터 서북쪽으로 115km에 칸차나부리 라는 도시의 콰이강에 있습니다.
한국인도 일본군 소속이 되어 이 다리 건설에 참여 하였습니다. 그들은 전후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되거나 후에 사면되어 비참한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묘지의 동판에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약자에겐 평화를 누릴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심에서의 전쟁은 무명과의 전쟁을 의미하겠지요.
07) 고난을 피할 수 없는 투쟁의 시대에 사는 중생을 어떻게 구하는가? 지상에서 비참과 불행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
“그것에 대해 부처는 난세에 사는 민중 한사람 한사람을 강하고 현명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어떤 고난도 물리치는 불계의 생명력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어본존을 신수하는 실천 속에 현세안온, 후생선처라는 큰 공덕이 있다고 부처는 약속 하셨습니다. 집행부의 무리들은 어본존 신수가 아닙니다. 어본존 이용입니다.
중생소유락은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의 문입니다. 법화경을 수지한 중생에게는 고뇌에 찬 현실사회가 최고로 유락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