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바람/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의 자화상
●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속의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법화경의 지혜, 3권, 148-150쪽의 내용입니다. <그림 속에 미켈란젤로 자신도 있다. 그 묘사방식이 굉장하다. ‘빈 허물’이다. 한 장의 가죽과 같은 모습으로 무참하게 축 늘어져 있다. ‘살가죽이 벗겨진 체 순교했다’는 성자의 살가죽이 그의 자화상이 되고 있다.
왜 자신만을 그렇게 묘사했을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보고 진실하게 살아온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인물들의 육체는 완전하게 묘사하고 있다. 살아 있는 듯한 그 모습은 모두 미켈란젤로 자신이 부여한 것입니다.
주고 또 주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 빈 껍데기가 될 때까지 다 주고 나서 죽었다. 보살입니다. 자신을 준다고 하는 불석신명(不惜身命)의 혼백을 나는 느꼈습니다.
전기에 나오는 미켈란젤로의 실제 모습은 살집이 좋고 튼튼한 골격을 갖춘 체격입니다.그런데 여기서는 가죽만 남아있다… 깊은 의미를 느낍니다.
인간 그 자체입니다. 위대한 범부입니다. 거기에 위대함이 있다. 차원은 다르지만 불법의 구극도 ‘위대한 범부’로서 살아가는 데 있다. 자기의 생명을 다 주고 나서 죽어간다. 법을 위해 사람을 위해 사회를 위해 끝까지 진력하고 너덜너덜하게 되어 죽어간다. 그것이 보살이며 부처다.
순교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외쳐 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 없이 불법은 없다. 이 순교의 마음을 법화경은 “나는 신명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무상도를 아끼노라”(법화경 443쪽)고 설하고 있다.>
학회정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신홍법의 혼을 잊는다면 진정한 창가학회가 아닙니다. ★ “하루 수십 수백통씩 어서와 선생님5.15지도를 퍼나르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불석신명의 자세가 아닌가, 순교의 모습이 안닌가, 정말 감동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생명은 본래 묘법 근본입니다.
<사바세계에 있는 중생의 마음은 번뇌나 업(業)에 의하여 전도(顚倒)되고 있다. 즉 우리들의 생명은 본래는 ‘묘법 근본’입니다. 그것이 ‘에고 근본’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 전도입니다. 불계라는 ‘영원한 생명’을 자신이 직접 느끼는 데 그 전도됨이 방해하는 것입니다.
수량품에는 전도된 중생은 부처가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앟는다고 합니다. 또 전도된 중생은 괴로움의 바다에 빠진다고도 합니다. “전도(顚倒)된 중생에게 가까이 있을지라도 보이지 않게 하도다”(법화경 506쪽) “나 모든 중생을 보니 고해(苦海)에 빠져 있도다”(법화경 507쪽)
★ 귀하는 “한국 전체라 할 정도로 선생님 5.15지도를 외면하고 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된 중생이야말로 5.15지도를 외면하고 있는 간부들입니다. 이들은 ‘에고가 근본’이 되어 생명이 전도되어 있습니다.
부처를 여래라고 한다. 여래한 ‘여여(如如)하게 온다’ 즉 묘법이 순간순간 여기에 있는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생명상태입니다.
이 영원한 율동이 즉 영원한 생명입니다. 또 부처의 본체(本體)이며 본불(本佛)입니다. 제불의 모든 공덕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바로 도다 선생님이 깨달으셨던 것과 같은 ‘부처란 생명’인 것입니다.
이 본불(本佛)은 실은 우리들 생명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불은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되 중생’에게는 이 본불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난과 싸우면 자신의 전도된 마음을 단련시켜 영원한 생명과의 일체화가 된다. 자기 조절이라고나 할까,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나의 생명을 영원한 묘법의 율동에 합치시킨다. 전 인격이 영원한 우주생명과 융합하는 것입다. 이것이 지용의 보살입니다.> (위의 책, 296쪽)
★ 5.15지도의 실천을 위해 싸우면 전도된 마음을 단련시켜 영원한 생명과 일체화가 되는, 자신의 생명이 영원한 우주생명과 융합하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 맺음 말
대성인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익숙하고 새가 하늘에서 자재(自在)인 것과 같도다”(어서 1033쪽) 지용의 보살은 아주 먼 옛날부터 한결같이 묘법을 수행해 왔습니다. 묘법 근본, 신심 근본의 삶을 단련해 왔습니다.
대성인께서는 지용의 보살을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을 단련하셨으리라”(어서1186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바세계에서 대난도 이겨내고 홍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용의 보살이기에 5.15지도의 실천도 당당히 해 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용의 보살과 적화의 보살과 차이가 있습니다. 적화의 보살은 어디까지나 소선(小善)을 계속 쌓아서 성불하려는 보살입니다. 소선은 오로지 자신들의 깨달음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려 하지 않는 에고이즘입니다.
본화지용의 보살은 생명의 오저에서 마치 화산폭발과 같은 기세로 불계의 대생명력을 분출하는 보살입니다. 대선은 법을 위해, 사람을 위해, 사회를 위해, 끝까지 진력해 갑니다.
★ 적화의 보살은 대선인 5.15지도를 외면하고 소선에 집착한 평의원을 비롯한 간부들 아닌가요? 반면에 본화 지용의 보살은 5.15지도의 실천을 위해 끝까지 진력하는 여러분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