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95년
포교하면 뭘 하나?
절복은 해서 뭘 하나? 목차
01) 절복하면 뭘 하나? 괜히 결과(공덕)는 안 나오고, (신심)하다가 퇴전할 텐데, (그런 생각을)하면서도 다른 종교를 잘 믿고 있는 대학교수를 포교를 합니다.
02) 95사태 당시 이즈미씨를 스승으로 착각한 적이......
역직자는 종교적 권위를 휘두르고, 회원들은 그런 것에 종속되어 가고???
03) 종교는 무조건 관용이라는 말을 앞세워 악을 가책하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01) “소카스피릿과 광선유포”에서 아래 인터넷에 올린 어느 간부의 체험담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시스템(집행부의 인권탄압과 사적대 행위)에서 신래자를 포교하면 무얼 하나? 괜히 결과(공덕)는 안 나오고 (신심)하다가 퇴전할 텐데, (그런 생각을)하면서도 다른 종교를 잘 믿고 있는 대학교수를 포교를 합니다. 회관에 와서 제목을 부르고 그 느낌을 이야기하고 그러다가도 정말 육성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라며 한탄합니다.
짧은 내용이지만, 이 체험의 주인공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조직 분열의 난세에서 어떻게 활동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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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리자 질문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3월이 교학시험의 달입니다. 기출문제(2013년) 중에 “이케다 선생님은 생명의 영원성을 깨닫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게십니까?”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답은 “생명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행이 필요합니다.”였습니다.
이론상으로 아무리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아도, 실제로 탄다(살아간다)는 실천이 없으면 탈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이론적으로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도, 수행이라는 실천(살아가는 것)이 없으면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영원성의 문제’는, ‘인과구시’라는 법칙에 의해 우리들 생활에 병이나 가난이라는 숙명으로 나타납니다. 대성인께서는 이를 과거세의 “정법비방에 의한 과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수행이 없다면, 우리 앞에 나타난 숙업은 과거세의 정법비방의 과보라기 보다는 한탄이나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말법은 오탁악세’ ‘연화는 흙탕물에서 피는 것’ ‘어본존 대 나’ ‘선생님 대 자신’ ‘신심은 혼자 서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옥같은 말씀도 평소에 수행이라는 실천 속에서 생명에 각인되고 깨달음으로 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학회가 중에 “탁악에 이 누리에서 학회에”라는 가사도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말법은 오탁악세이며, 사종의 도읍지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저의 학부에는 신심 하는 사람이 저 혼자였습니다. 그래도 그들과 신심대화하며 절복도 하고 공부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회 내부에 집행부라는 방법의 집단이 존재한다고 해도, 신심의 원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직에서 회원들과 신심 대화하고, 절복도 하며, 직장이나 가정 일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맑은 물에서 피는 연꽃은 없습니다. 연꽃은 집행부라는 흙탕물 속에서 성장합니다.
연꽃이 피면 필수록, 권력이라는 악은 힘을 잃고 본래의 사명으로 돌아 가게 됩니다. 국민이 현명한 사회에서 정치인들은 정치인일 뿐, 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권익을 착취할 수 없게 됩니다.
대성인께서도 “삼밭 속의 쑥 <중략> 자연히 곧아지는 것과 같다”(어서 1239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밭은 회원님들입니다. 쑥은 집행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이 사제정신에 서면, 집행부도 진상규명에 나와 잘못을 반성하고 본래의 사명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삼밭과 쑥, 이것이 광선유포의 방정식입니다.
회우를 만나면, 사제정신을 이야기 하면 됩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만을 이야기 하거나, 집행부의 비리에 집착하여 사제정신을 잃게 되면, 귀하의 질문처럼 미궁으로 빠져 스스로가 의욕도 잃게 될 것니다. 어디까지나 사제가 중심입니다.
사제 없이 소용돌이치는 오탁악세의 말법의 강은 건널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비판해도, 그것은 자신을 완성시켜 주기 위한 동지들의 목소리라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비굴해지는 것은 신심이 약한 탓입니다. 뭐라고 하든 본존님에게 기원한다. 그것이 신심입니다.
연에 흔들리거나 이젠 틀렸다고 단념하면 안 됩니다. 모두 자신의 생명을 위해 말해주는구나 라고 희망에 불타 오른다면 행복합니다.”(법련 2013.02월호, 35쪽)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02) 지난 1월 13일 평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한국SGI 제6대 이사장이 선임되었습니다. 어떻게 파화합승 자가 만장일치로 선임될 수 있었을까요? 공산당도 아니고,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불교회 회원들은 이를 보고도 침묵만 하고 있습니다. 역직자는 종교적 권위를 휘두르고, 회원들은 그런 것에 종속되어 가고, 회원들이 이런 체질에 깊이 밴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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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95사태의 본질은, '종속적인 종교관'과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종교관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인류의 추세로 보면, 아직도 성직자 중심의 종교관이 지배적입니다. 이는 인간을 멸시해 온 국수주의, 왕권주의, 군국주의, 물질만능주의, 신(神) 중심주의 등의 기존 사회관에 의한 병폐라고 생각합니다.
대성인께서는 “대악마는 거룩한 승으로 되어”(어서 1497쪽)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을 ‘일흉’으로 악을 엄하게 간파하고 싸워야 합니다.
95사태 당시 사제정신을 잊어버리고 권력에 눈이 멀어 이즈미씨를 스승으로 착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스승으로 하여 권력을 추종하며, 오늘날과 같은 스승을 협박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자신중의 충인 집행부라는 이질적인 집단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래도 집행부 자체의 잘못이나 방법을 지적하는 것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집행부가 기반으로 해 온 낡은 종교관,
다시 말해 “인간주의의 종교를 파괴하고, 권위주의의 종교를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체질,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달 법련(2013년 3월호 74쪽)에서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 박사의 런던 자택을 방문하여 대화한 내용을 말씀 하셨습니다.
“대화를 마칠 때, ‘저에게 뭔가 어드바이스를 부탁 드립니다’라고 했더니,
박사는 ‘탁상인간이 행동하는 사람에게 충언이라니 주제넘지만’라고 말머리를 꺼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케다 회장과 내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의견이 일치한 것, 즉 이케다 회장이 주장하신 중도(中道)가 바로 인류가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점입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중도란 불법의 생명 존엄의 철학에 입각한 인간주의입니다. 어디까지나 민중을 위해서, 민중과 함께 걸어갈 점진주의(漸進主義)입니다”
우리가 집행부와 싸우는 것은, 비인간적인 인권멸시의 권위적인 토양을, 진정한 의미로 변혁하는 종교개혁을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민중은 권력을 엄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민중은 영리해져야 합니다. 권력자에게 이용당하는 역사를 결코 되풀이 해서는 안 됩니다”(희망의 내일로)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민중은 권력을 엄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03) 종교란 인간과 사회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행에 빠뜨리려는 악의 세력과는 단호히 싸워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집행부를 악이라고 외치면 반감을 갖는 회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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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런 것을 관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니치렌 불법에서 설하는 관용은 결코 “악과 타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정안국론에는 “다만 나만이 믿을 뿐만 아니라 또 타인의 잘못도 훈계하리라”(어서 33쪽)라는 일절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악과 타협하지 않는 싸움이야말로 대성인 불법의 정신입니다. 창가학회는 “악과 싸우지 않고는 선도 없다”는 정신으로 전진해 왔으며 이것이 대성인 불법의 정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무조건 관용이다”라는 말을 내세워 악을 가책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