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참고문헌 1·4-1·11/<1-7>단결어서, 사도어서

(1-7) 단결어서, 사도어서

myungho 2012. 4. 7. 05:42

 

(3) 이체동심 단결 중점 어서

사도어서 / 사자신중의 벌레

  

 

 

 

(2) 이체동심 단결 중점어서

 

1

「단 성인(聖人)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 우리들이 부르는 제목의 공덕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나이까. 라고 운운. 조금도 승렬(勝劣)은 있을 수 없소이다. (중략) 다만 이 경의 뜻에 배반하여 부르면 그 차별이 있는 것이로다.(중략) 「악의 인()에 十四가 있으니(중략) 十一은 경선(輕善)·十二는 증선(憎善)·十三은 질선(嫉善)·十四는 한선(恨善)이니라』(중략)

「약실(若實) 약부실(若不實)」이라고도 설해져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를 생각하건데 어떠한 경우라도 법화경을 가진 자를 서로 헐뜯지 말지어다. 그 까닭은 법화경을 가진 자는 반드시 모두 부처이며, 부처를 헐뜯는다면 죄를 받는 것이니라. 이렇게 알고서 부르는 제목의 공덕은 석존의 공덕과 동등하니라』(마쓰노전답서 1381~1382)

 

<통해>

〈마쓰노전답서(십사비방초:十四誹謗抄)〉에 가로되, 마쓰노전으로부터의 편지에 “성인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 우리들 범부가 부르는 제목의 공덕과는 차이가 있습니까?”하는 질문이 있다. 답하여 말한다면 이 제목의 공덕에는 누구든 전혀 승열은 없다.(모두 평등하게 공덕을 받을 수 있다)(중략) 다만 이 법화경의 마음에 배반하여 제목을 부르는 경우에는 공덕에 차별이 있다.(법화경의 마음에 배반해 버리면 아무리 제목을 불러도 공덕은 나오지 않는다)(중략)

그리고 이 법화경의 마음에 배반하는 악()의 인()으로서 십사비방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선행(善行)의 사람(정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 동지)에 대한 비방으로서 특히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十一에 경선(輕善: 선한 동지를 얕보는 일) 十二에 증선(憎善: 선한 동지를 미워하는 일)

十三에 질선(嫉善: 선한 동지를 질투하는 일) 十四에 한선(恨善: 선한 동지를 원망하는 일)이다.(중략) 법화경 보현품에는 「혹은 사실이든 혹은 사실이 아니든, 법화경을 수지 하는 사람을 욕하면 그 죄는 무겁다」고도 설해져 있다. 이들의 경문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화경을 수지 한 자를 서로 헐뜯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법화경을 수지 한 자는 반드시 모두 부처다. 부처를 헐뜯는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고서 부르는 제목의 공덕이야말로 부처가 부르는 제목의 공덕과 동등한 것이다.(마쓰노전답서 1381~1382)

 

<강의록 중에서>

마쓰노전이 “성인이 부르는 제목과 범부가 부르는 제목은 공덕의 차별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한 것에 대하여 대답하신 장면이다.

우선 제목의 공덕은 모두 평등이며 그리고 차별이 없다는 취지를 말씀하시고 있다. , ‘이 경()의 마음’에 배반하여 부른다면 차별이 있다고 하는 신심 하는 자세의 엄함을 가르치신다.

이 장에서는 십사비방을 들으시며 재가와 출가에 걸쳐 27/ 악도에 떨어지는 인()을 훈계하고 계신다. 특히 27/ 불경보살의 수행을 들으시며 실()과 부실(不實)에 관계없이 법화경을 가진 자를 비방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밝히시고, 또한 법화경 즉 어본존을 가진 자는 모두 부처이기 때문에 십사비방의 마지막 4개인 경선, 증선, 질선, 한선 등 원질을 하면 안 된다고 엄하게 지적하고 계신다.

 

‘이 경의 마음’에 대해서는 모든 어초를 통하여 설하시고 있다. 지금 여기에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법화경의 수행에는 많은 단계가 있지만 이 경의 마음에 배반하는 요인을 총괄하여 십사비방을 들고 계신다.

세목 별로

법화경을 가진 자를 원질하면 안 된다.

신분이 미천한 자라도 법문을 아는 자에게는 존경하여 구도하고 배워야 한다.

㉰구도를 위해서는 신명을 바치는 각오로 구도해야 한다.

㉱불법을 공부하여 방법을 책망하는 것을 잊고 유희잡담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재가의 자는 여념이 없는 제목을 부르고 정법을 호지하는 화합승단에게 공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으로 지도하고 계신다.

이렇게 중요한 신심을 계속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불하고 영원한 복운을 쌓아 진정한 환희를 맛볼 수 있다고 확약하시며, 거듭해서 신심이 약하면 성불 할 수 없는 것을 주의하고 계신다.

 

이 지도들을 오늘날 광선유포를 목표로 하는 우리들의 신심활동에 비춘다면

㉮는 신뢰를 기조로 한 단결의 소중함을 가르치신 것이며

㉯는 구도심, 향상심

㉰는 자기 자신의 평생을 광선유포와 신심에 바치는 정열

㉱는 교학, 절복을 근본으로 해가야 하는 것이며 막연하게 향락적인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훈계이며

㉲는 제목 제일로 어본존과 창가학회를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다만 이 경의 뜻에 배반하여 부르면 그 차별이 있는 것이로다”

여기서는 대성인께서 대답하시는 큰 요점을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창제의 공덕이 평등인 것, 둘째는 경(:어본존)의 마음에 배반하면 차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 그러면 우선 제목의 공덕이 평등하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석존은 40여 년 동안 이전의 여러 경을 설하였다. 그러나 이전경에서는 십계의 중생을 차별하였다. 남자에게만 성불을 허락하고 여인의 성불을 허락하지 않아 이것을 싫어하였다. 이승의 중생을 가책하셨다. 악인은 성불할 수 없었다.

그것이 법화경 적문에 이르러 비로소 여인의 성불, 악인의 성불, 이승의 성불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론상 모두가 평등하게 기별(記別)을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본문에 들어가 부처 자기 자신의 행동 위에 본인·본과·본국토가 완벽하게 밝혀졌다. 여기에 사실상 일체의 모든 것이 성불할 수 있다고 입증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화경이 없어서는 석존의 불법은 비현실적인 관념론에 시종했을 것이다.

 

법화경이 있었기에 비로소 동양 사상의 최고봉으로서의 불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옥의 사자(使者)이며 부처의 씨앗을 단절한다고 기피 당했던 여성도, 악역무도의 극에 달한 악인 제바달다도, 타버린 싹이라고 일컬어졌던 이승도 모조리 평등하게 성불을 허락한 것이 법화경이다. 바로 법화경이야말로 완전무결의 평등론을 설한 것이다.

법화경의 대철리의 근본을 그대로 도현한 것이 어본존이다. 어본존은 이론상에서도 사실상에서도 생명의 궁극적인 원리이며 당체이다. 그리고 평등대혜(大慧)의 어금언대로 모든 민중에게 양광처럼 자비와 위대한 불력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이다.

 

§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어본존에게 창제한다고 해도 불법의 근본정신에 배반하는 한, 위대한 공덕력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법을 왜곡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잘못되게 만드는 것이 된다. 그럼 불법의 근본정신에 배반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이 어문 뒤에서 말씀하신 십사비방 중에서 제11의 경선, 다음의 증선, 질선, 한선의 사비방(四誹謗)이 그것에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느덧 상대방을 자신과 비교하여 사소한 일로 서로 미워한다든지 하기 십상이다. 그것이 심해져 화합승의 단결을 파괴하는 것이 되며 더 나아가서는 광선유포의 방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본존을 믿는 자는 특히 이 비방에 유의하며 기필코 이러한 사비방(四誹謗)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2

『대아비지옥(大阿鼻地獄)이란 또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하느니라.(중략) 업인(業因)을 말하면 오역죄(五逆罪)를 지은 사람은 이 지옥에 떨어지리라. 오역죄라 함은 一에 살부(殺父)· 二에 살모(殺母)· 三에 살아라한(殺阿羅漢)· 四에 출불신혈(出佛身血)·五에 파화합승(破和合僧) 이니라』(현방법초 447)

 

<통해>

〈현방법초(顯謗法抄)〉에 가로되, 대아비지옥은 무간지옥(가장 고통이 크고 긴 최하의 지옥)이라고도 하느니라.(중략) 여기에 떨어지는 업인(業因:악업의 인)은 무엇인가 하면 오역죄(五逆罪)를 범한 사람이 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오역죄라는 것은 一에 살부(아버지를 죽이는 일) 二에 살모(어머니를 죽이는 일) 三에 살아라한(불법의 성자를 죽이는 일) 四에 출불신혈(부처몸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 일) 그리고 五에 파화합승(화합승을 파하는 일)이다.

불전에는 이 오역죄 가운데서도 특히 ‘파화합승’의 죄가 가장 무거우며 일체의 악행 속에서도 극악의 중죄는 ‘파화합승’이라고 엄연하게 설해져 있다.〈대비파사론(大毘婆沙論)〉 〈구사론(俱舍論)〉〈대승의장(大乘義章)등〉

 

(오카야마 근행회1993. 11. 30)

도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지도하셨다.

“광선유포를 하는 것은 학회 이외에는 없다. 이것을 배반하면 오역죄가 된다. 학회를 떠나 행복한 자는 없다. 공덕이 있을 리가 없다.

“불법에 29/ 오역죄라고 하는 것이 있다. 부모를 죽인다. 이것은 역죄(逆罪)이다. 다음에 살아라한(殺阿羅漢). 세상의 지도자, 스승을 죽이는 것을 살아라한 이라고 한다. 다음에 출불신혈(出佛身血). (부처의 몸에서 피를 낸다) 어본존을 파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소홀히 하는 것은 오역죄의 하나가 된다.

다음에 화합승(和合僧)을 파괴한다. 마음의 화합을 파괴하고 부처의 길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라고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스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학회는 화합하여 광포를 위해 日蓮 대성인님의 지도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파괴하려는 자는 반드시 불법의 큰 벌을 받는다. 만약 파괴하려는 자가 있다면 해 봐라. 안에서든 밖에서든 해 봐라. 절대로 할 수 없다.(1953 2 27. 본부간부회)

‘승’이란 본래 ‘화합승’을 말하며 불법에서 존경해야 할 참된 화합승이란 현대에서는 창가학회이다. ‘파화합승’은 오역죄인 것이다.

 

♧ 여동죄(與同罪)의 대죄

대성인은 ‘무간지옥’이나 ‘대아비지옥’에 대해 「이 지옥에 떨어진 자는 이 정도로 오랫동안 무간지옥에 주하며 대고(大苦)를 받느니라. 업인(業因)을 말하면 오역죄를 지은 사람은 이 지옥에 떨어지리라」(어서 447)라고 말씀하셨다. -

(통해) 이 지옥에 떨어진 자는 이 정도로 오랫동안(一中劫) 무간지옥에 주하며 대고뇌를 받는 것이다.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업인을 말하면 오역죄를 범한 사람이 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

 

● 닛켄 자신이 그렇게 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민중이 그에게 속아버린다면 이 대죄와 30/ ‘여동죄’가 되고 만다. 그것이 가엾다. 결단코 파절하여 방법에서 깨어나게 하여 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도다(戶田) 선생님의 이 확신과 같이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느 누구의 책모일지라도 절대로 학회를 파괴할 수는 없다. 부처의 몸을 ‘금강신(金剛身)’이라고 한다. 금강석(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고 어떠한 번뇌나 미혹에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가학회도 어떠한 장마나 난에도 부서지지 않는 ‘금강불괴의 교단’이다. 이번 종문문제에 의해, 새삼 그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 존귀한 학회를 여러분은 결단코 끝까지 지켜 주기 바란다.

 

(4회 전국청년부간부회 1998 5)

도다 선생님의 슬하에서 개최되는 매월의 본부간부회는 주로 도쿄·도요지마공회당을 회장(會場)으로 광포 전진의 역사를 새기는 중요한 회합이었다. 나는 그 회합 때마다 도다 선생님의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우렁찬 외침을 잊을 수가 없다.

 

1954 2월의 본부간부회에서 도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지도하셨다.

“우리 학회는 화합(和合)하여 광포에로, 日蓮 대성인의 가르침을 대성인의 지도대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불법의 큰 벌을 받게 된다. 만약에 파괴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해 보아라. 내부에서 외부에서 해 보아라. 절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은 진심의 ‘화합승’의 단체이라고 외치는 바이다. 간부는 결속해서 거기에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파괴하는 자도 나쁘지만, 그들뿐만이 아니라 파괴당하는 쪽에도 죄가 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에 깊이 명심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확고부동한 신심을 구해 마지않는 바이다”라고.

 

또한 서거하시기 1년 전 본부간부회의 석상에서 도다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신심이라면 도다와 대결해도 안지겠다고 하는 상대라면 나도 맞서겠습니다. 31/ 나는 돈에는 놀라지 않는다, 권력에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신심만은 두렵다. 그런데 나는 신심에는 자신이 있다. 나에게 반항해서 해 보겠다면 해 보아라. 불초(不肖)한 나이지만 日蓮 대성인님의 사자(使者)로서 7백 년 후인 오늘에 나타났으므로 ‘창가학회란 가짜이다, 엉터리이다’라고 말한다면 말하도록 내버려 두도록 합시다. 어떠한 결과가 될지 몰라도 절대로 지지 않겠습니다. 31/ 나는 3년이 되기 전에 반드시 결과를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것이 신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돈도 아니며, 권력도 아니다. 31/ 학회의 위치를 이용해서 돈의 문제나 권력의 행동을 하게 되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선언하고 오늘 나의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라고 끝맺으시고 있다.

 

참으로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오늘 또 미래에의 훈계의 말씀이라 생각한다. 31/ 신심이 없는 인간이 직함이나 권력이나 학력 등으로 아무리 표면을 장식한다 해도 허무할 뿐이다. 31/ 이름도 없는 한 청년이나 한 부인이라 해도 신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 다시 말하면 한없이 강하고 깊은 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40년간의 신심 체험으로 말할 수 있는 실감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제군들은 ‘단연코 지지 않는다.’라는 ‘확고부동’한 신심에 입각해서 위대한 日蓮대성인 불법과 학회의 깨끗한 신심의 흐름을 어디까지라도 끝까지 지켜 나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기를 바라 마지않는다고 진심으로 염원하고 기념의 스피치로 하겠다.

 

3

31/ 석존의 훈계, 동지의 욕을 하지마라

 

어느 불전(佛典)에 설해진 엄한 훈계가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제자(이름은 코카리카)가 석존에게 와서 사리불(舍利弗)과 목련(目蓮)의 욕(고자질)을 했다.

“거룩한 분이시여(석존) 사리불과 목련은 나쁜 욕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쁜 욕망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석존은 그 욕을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지 말라! 나의 제자인 사리불과 목련에 대하여 청정한 신앙심을 일으켜라! 사리불과 목련은 선량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제자는 이 스승의 말씀을 순순히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석존에게 대꾸하고 다시 욕을 했다. “저는 스승(석존)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리불과 목련은 나쁜 욕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쁜 욕망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석존은 다시 같은 답을 되풀이 했다.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지 말라! 나의 제자인 사리불과 목련에 대하여 청정한 신앙심을 일으켜라! 사리불과 목련은 선량한 사람이다.” 그래도 이 남자는 석존에게 반발했다. 세 번 같은 욕을 되풀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석존의 대답도 또한 세 번 같은 것이었다. (동지의 욕을 하지 말라! 동지를 신뢰하라!)

 

이처럼 스승이신 석존이 인내심 강하게 선도(善導)하려고 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 지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이 남자의 온몸에 겨자 알 만한 작은 부스럼이 돋아났다. 그것은 처음에는 작았지만 점점 커지고 드디어 익은 오이만큼 되어 파열해서 고름과 피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32/ 그 병고 때문에 죽어 홍련(紅蓮)지옥에 떨어졌다.

석존은 그 후 제자들에게 이 비극의 이유에 대해서 “사리불 및 목련에 대하여 적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석존은 계속해서 “사람이 태어났을 때에는 실로 입안에는 도끼가 돋아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욕을 하여 그 도끼로 자신을 베어 자르는 것이다. 32/ 헐뜯어야 할 사람을 칭찬하고 또한 칭찬할 만한 사람을 헐뜯는 자 - 그는 입으로 화근을 거듭하여 그 화근 때문에 행복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설했다.

 

4

『외도(外道)·악인은 여래의 정법을 파()하기 어려우나 불제자(佛弟子)등이 반드시 불법을 파하느니라. 32/ 사자신중(師子身中)의 충()이 사자를 먹는다. 등 운운. 대과보(大果報)의 사람을 다른 적은 파하기 어렵지만 친밀한 자가 파()하느니라』(사도어서 957)

 

<통해>

유명한 〈사도어서〉에는 외도나 악인에 의해 여래의 정법이 파괴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불제자 등이 불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사자의 몸속에 기생한 벌레가 사자를 먹는 다란 이것을 말한다. 대과보의 사람은 다른 적에게는 지지 않지만 오히려 친한 사람에게 당한다.

 

《강의록 중에서》

정법을 깨뜨리는 것은 결코 외적이 아니라 불제자 중에서 사자신중의 충과 같은 자가 나타나 불법을 파괴할 것이라는 훈계이다.

 

선시초에『악인들은 석가의 불법을 멸실하지 못하느니라. 삼의(三衣)를 몸에 걸치고 일발(一鉢)을 목에 걸고, 32/ 팔만법장(八萬法藏)을 다 이해하고 십이부경(十二部經)을 입으로 외우는 승려가 그의 불법을 멸실하리라…』 (286) 라고 있듯이

 

불제자라고 칭하면서 불교를 깨뜨리는 것이 여러 종교의 조사(祖師)등이며 특히 대성인 재세 당시, 참성증상만이 된 고쿠라쿠사 료칸이나 켄초사 미치타카를 비롯한 대성인에 적대한 도문증상만의 주지 등 모두는 정법을 깨뜨리는 사자신중의 충이었던 것이다.

 

5

33/ 부처가 되는 길은 선지식(善知識)보다 더함은 없느니라.(삼삼장기우사 1468)

 

<통해>

부처가 되는 길은 선지식(좋은 동지)보다 더한 것은 없다.

 

(참된 인간조직이야말로 종교의 기반 - 87 12 12일 스피치 중에서)

학회의 조직은 어디까지나 광선유포의 추진을 위해 있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심의 성장과 성불의 궤도를 받쳐주고, 서로 지켜 가기 위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포의 조직이란 수 없이 많은 선지식의 모임이라 해도 좋다. 대성인은 삼삼장기우사에서 첫머리부터 선지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계신다.

 

「대저 나무를 심는데도 대풍이 불어도 강한 지주를 세우면 넘어지지 않으나, 본래부터 심어져 있는 나무라 해도 뿌리가 약한 것은 넘어지느니라.(어서 1468)

나무를 심은 경우에 설령 대풍이 불었다고 해도 강한 지주로 받쳐주면 쓰러지지 않는다. 반대로 본래부터 성장하고 있는 나무라 해도 뿌리가 약한 것은 쓰러지고 만다.

 

33/ 무기력한 자라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넘어지지 않으나, 조금 다기진 자도 혼자라면 험한 길에는 넘어지느니라(어서 1468)

인간에게 있어서도 똑같은 것이다. 힘이 약하고 무기력한 자라 해도 도와주는 자가 강하면 쓰러지지 않는다. 반대로 다소 장건(壯健)한 자일지라도 혼자라면 험한 길에서는 쓰러지고 만다. 이것은 도리이다. 누구라도 이견은 없음에 틀림없다. 불법의 가르침은 항상 이러한 만인이 납득하지 않을 수 없는 도리의 연장선상에 설해져 있다. 이 점을 다시금 확인해 두고 싶다.

 

다시 말하면 성불의 길에 있어서도 설령 최초는 신심이 약한 자라고 해도 강한 받침을 얻게 되면 쓰러지지 않는다. 반대로 어설프게 자기는 신심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삼장사마가 세차게 부는 험한 길은 혼자서 걸어가기란 용이하지 않다. 그것을 위해 아무래도 동지가 필요하다. 선지식이 필요하며 신심의 조직이 필요하게 된다.

33/ 물론 성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수행이며 노력에 의한다. 다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일어서서 끝까지 걸어간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조직이나 동지는 그 개인의 수행을 격려하고 서로 계발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불의 완성을 돕는 보조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보조의 역할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대성인께서는 「그러므로 33/ 부처가 되는 길은 선지식보다 더함은 없느니라. 나의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33/ 다만 뜨겁고 찬 것을 알만한 지혜라도 있다면 선지식이 소중하니라. (어서1468)

 

부처의 도()는 심심하며 그 지혜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에 비하면 아무리 현명하게 보이더라도 범부의 지혜 따위는 사소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불하는 길은 옳은 선지식을 따르는 이외에는 없다. 그렇게 하면 선지식의 힘으로 틀림없는 성불의 궤도를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대성인이 ‘나의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라고 말씀하셨듯이 34/ 어떤 대학자라 해도 불법의 일은 불법자에게 배우는 이외에는 없다. 어떠한 대과학자, 대의학자도 자기의 ‘생명’ ‘인생’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34/ 어떠한 대정치가, 대부호라 해도 절대적인 행복에 대한 법칙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사소한 ‘나의 지혜’를 의지하여 겸허한 구도의 마음을 잃어버린다. 여기에 불행의 인()이 있다.

 

34/ 지식이 곧 행복은 아니며 부()가 곧 행복이 아니다. 또한 34/ 지위나 명성도 행복과 같을 수 없다. 다 알고 있는 것 같이 보이면서, 이 엄숙한 사실에 깊고 예리하게 주시하는 사람은 적다. 그러나 이 일점에 바로 인간의 ‘행복’의 정수를 밝힌 불법을 진지하게 구해 나가야만 하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34/ 선지식의 작용에는 수행자를 지키면서 안온하게 수행시키고(외호-外護), 또한 서로 절차탁마 하여(동행/同行), 그 위에 불법의 정의를 가르쳐서 선행으로 향하게 한다(교수-敎授) 는 등이 있다. 다시 말하면 34/ “근행을 합시다.” “회합에 갑시다.” “어서를 배독합시다.” 등등. 광선유포의 쪽으로, 어본존 쪽으로, 묘법과 성불의 쪽으로 ‘가리켜 인도하는 지도자’ 바로 여러분이야말로 고귀한 유덕의 선지식인 것이다.

 

34/ 반대가 악지식이다. 오늘은 그 상세한 의의는 생략하겠으나 하나만 말씀 드린다면 설사 신심하고 있는 간부라 해도 악지식으로 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가 불자를 멸시하면서 뽐낸다던가, 희롱한다던가, 책임감이 없고, 철저하지 못한다거나, 성장이 중지되고 있다던가 하면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신심 성장도 방해 당하고 만다. 순수한 후배가 자유롭게 활약하고 성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는 너무나도 무자비이며 불쌍하다.

 

이러한 지도자의 본질은 설사 말은 교묘하고 표면을 장식할지라도 마음은 ‘자기보신’ 과 ‘이해’ 와 ‘교만’ 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34/ 오저에서 노리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34/ 선직식이 벗을 ‘묘법’의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엉큼하고 비열한 마음의 악지식인 ‘자기’에게로 향하게 할 뿐인 것이다. 34/ ‘법’ 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의 교활한 ‘에고(이기주의)’ 가 중심이 된다. 이 점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악지식에 분동 되면 악도로 향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허식의 가면을 쓴 신심 없는 리더는 때와 더불어 언젠가 광포의 대도에서 물러서고, 모습이 사라져 가는 법이다. 이것이 대성인께서 재세하신 시대이래, 변하지 않는 방정식이며, 나의 40년간의 경험적 사실이기도 하다.

 

♧ 서로 존경하고 사이좋게 전진

도다 선생님은 항상 35/ “창가학회의 조직은 도다의 생명보다도 소중하다” 라고 까지 말씀하시고 있었다. 학회는 선지식의 모임이다. 우리들은 서로 선지식이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 중요한 점의 하나는 상대방을 크게 포용해 가는 넓고 넓은 마음이다.

 

6

『항상 서로 이야기하여 출리생사(出離生死)해서 동심(同心)으로 영산정토(靈山淨土)에서 수긍하며 이야기하시라』(화과성취어서 900)

 

<통해>

35/ 항상 서로 대화를 나누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같은 마음으로 영산정토에서 서로 수긍하여 이야기하시라. (동지는 가족 이상이다. 영원히 서로 지키고 격려해 가야 한다)

 

7

이러한 탁세(濁世)에는 서로가 항상 애기를 주고받아서 쉴 새 없이 후세를 원하시라』(법화행자봉난사 965)

 

<통해>

35/ 이러한 탁세에는 서로 항상 대화를 나누고 틈도 없이 (서로 동지의 욕을 할 틈도 없이 오직 광선유포를 위하여) 사이좋게 후세를(눈앞의 감정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원하도록 하시라.

 

(2.11기념대표자회의 스피치 1998 2)

♧ 창가학회는 사회의 안전지대

여하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잘못된 사회다.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그러기에 ‘사회의 안전지대’로서 창가학회가 소중한 것이다.

대성인은 유죄의 땅 사도에서 문하에게 말씀하신다.

“각기 서로 이 편지를 읽고 들려주게 하시오. 이처럼 탁한 세상에는 서로 항상 이야기하며 쉬지 않고 후생(後生; 영원한 행복)을 원해 가시오”

 

지금 이러한 지도대로 서로 배우고 격려하여 난세를 타고 넘는 것이 창가학회이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행복하게 - 라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기원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 지휘를 잡고 계신 간부 여러분들의 사명이 얼마만큼 존귀한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 제석(帝釋)·범천(梵天)·전륜성왕(轉輪聖王)의 의자에

법화경의 수희공덕품에는 “묘법을 한 마디라도 설하는 공덕은 막대하다”라고 설해져 있다. 내용을 알기 쉽게 말하자면-.

“묘법을 설하는 장소 - 지금으로 말하면 좌담회와 회합이다 - 에 가서 다른 사람이 왔을 때 36/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라고 자리에 앉게 하고 이야기를 듣게 해 주고, 자신의 자리를 좁혀 앉게 해 주었다고 하자. 이 사람은 그 공덕으로 ‘제석천의 의자’ 혹은 ‘범천의 의자’ 혹은 ‘전륜성왕의 의자’에 앉을 수 있다”고 하였다. <묘법연화경병개결 535>

 

여러분이 세세생생 대()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문증(文證)이다. 또 직장에서도 ‘장()’이 되고, 지역이나 다른 조직에서도 리더로서 활약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입장이 된다는 문증이다. 여러분은 영원히 대지도자가 되는 복덕과 힘을 지금 쌓고 있는 것이다. 불법에 헛된 것은 없다. 지금의 수행이 영원에 걸친 재산을 쌓고 있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손해이다.

 

♧ 홍교의 대 이익

또 이렇게도 설해져 있다. “누군가에게 ‘법화경이란 가르침이 있다네. 함께 가서 이야기를 듣자’고 권했다고 하자. 거기서 36/ 상대가 설령 한 순간이라도 묘법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야기를 듣자’고 권한 사람이 그 공덕으로 훌륭하고 머리가 좋은 보살이 되어 태어난다. 현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건강하고 좋은 얼굴을 하고 기품이 있고 유복하며, 태어날 때마다 부처와 만난다. - 어본존 밑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 묘법을 듣고 가르침을 믿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법을 듣게 해 줄 때마다 (상대가 신심을 하든 안 하든) 이와 같이 훌륭한 공덕이 있다. 하물며 가르침을 오로지 한 마음으로 듣고 설하고 근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여설수행(如說修行)’하는 사람의 공덕은 끝이 없다”

 

법화경에는 이와 같이 설해져 있는 것이다. 36/ 광선유포를 위해 싸운 사람이 ‘대왕’인 것이다. 어떠한 유명인보다도 권력자보다도 존귀하다. 36/ 그 사람을 소중히 하고 칭찬하면 자신도 지켜진다. 광선유포에 면려하는 사람을 칭찬해 가면 거기에 복운이 붙고 기세가 붙는다. 남성은 여성의, 또 선배는 후배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여 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나도 생명의 ‘대왕’이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면서 스피치를 끝내고 싶다.

 

8

『거듭 부탁하노니 스루가(駿河)의 사람들 모두 같은 마음이 되라고 말씀하시라』 (조렌보어서 1435)

 

<통해>

스루가(지금의 시즈오카)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 되라고 전해 주시라.(단결하여 난을 극복해 가십시오)

 

※ 지금 대성인께서 계신다면 “거듭 부탁하노니 한국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라고 말씀하실 것은 틀림없다.

 

간사이 최고 협의회(1991.10.17)

♧ 마란 파괴자

37/ ‘마()’란 범어(梵語) ‘마라’를 줄인 말로 ‘파괴’라고도 번역된다. 개인의 신심을 파괴하는 동시에 화합승(和合僧) - 신심의 단결을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 마란 ‘파괴자’인 것이다.

폭력에 의한 육체적인 박해나 처벌, 처분이라는 사회적 제재(制裁) 등의 정신적 압박, 이익을 은근히 부추는 경제적 유혹 등에 의해 개인의 신심을 파괴하고, 퇴전시키는 것은 마의 상투적인 수단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 멋대로 날뛰는 때야말로 더욱더 신뢰의 유대를 강화시켜, 이체동심의 전진이 아주 중요하게 된다. 37/ ‘정의의 단결’이야말로 마의 모략을 막는 방파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대성인은 「부디 부디 스루가(駿河)의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되라고 말씀 드리시라」 (어서 1487)

- 아무쪼록 스루가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 되시도록 하라고 전해 주시오 -

후지군(富士郡)의 가미가타 지역에 사는 미사와고지로(三澤小次郞)와 오키쓰에 사는 조렌보(淨蓮房)에게, 시기(時期)는 다르지만 완전히 똑같은 말씀의 지도를 하시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결의 중요함을 가르치시고 있었다는 것을 배찰 할 수 있다.